[쿠키뉴스 창원=강승우 기자] “설 명절에는 가족들과 집에서 떡국을 먹으며 오손도손 보낼 줄 알았어요.”
7살과 5살 된 두 자녀가 있는 이혜민(36‧여)씨가 25일 천막농성장에서 울먹거리며 이같이 말했다.
혜민씨는 14년 전인 22살 때 한국산연에 입사했다.
한국산연은 경남 창원시 마산자유무역지역 내에 있는 일본 산켄전기의 한국 자회사다.
혜민씨는 품질검사 부서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해오다가 LED 조명 생산부서로 옮겼다.
오전 8시 출근하고 오후 5시 퇴근한 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혜민씨는 남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말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혜민씨를 비롯해 정리해고된 생산직 직원 모두가 해고 다음날 오전부터 회사가 아닌 도로로 출근했다.
이들은 도로에서 “사측의 정리해고가 불법”이라며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벌였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가서 집회를 열기도 하고 본사가 있는 일본에도 건너가 원정 투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측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해고노동자들은 회사 앞에 천막을 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길이 10m, 폭 2m 남짓한 천막에 3명이 매일 돌아가면서 밥을 먹고 잠도 잔다.
혜민씨 가족들도 처음에는 복직 투쟁을 만류했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혜민씨와 함께하는 동료도 처음보다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도중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사측의 정리해고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이 문제를 다뤘던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다행히 해고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측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하고 복직을 주문한 것이다.
부당해고 판정 이후 혜민씨 가족들도 복직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측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남은 해고노동자들은 사측과 또 다시 투쟁을 벌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노위 판정서를 받는 대로 사측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측의 반발에도 이들이 천막농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날은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 꼭 141일째이며, 해고 117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금속노조 한국산연지회는 이날 회사 앞에서 민주노총 경남본부 소속 조합원들과 떡국나누기 행사를 여는 것으로 설 명절을 대신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 참석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지역 해고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또 국회 차원에서 외국 자본 기업의 문제점을 개선해 줄 것도 촉구했다.
혜민씨는 “제 인생 대부분을 보낸 곳으로 정이 많이 든 곳이어서 지금이라도 회사가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다”며 “하루빨리 출근해서 남들처럼 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가족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복직하는 그날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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