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비유와 반어. 우리가 일상대화에서 흔히 쓰는 표현기법입니다. 그러나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간에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생긴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뜻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에서는 돌려 말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유력 대선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청자를 고려하지 않은 수사법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습니다. 바로 '선한 의지' 파문인데요. 안 지사는 지난 19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안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로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사익을 챙기려는 목적으로 설립했다는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난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을 들었습니다.
여론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전 대통령의 4대강과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에서 선의를 발견할 수 있다니 놀랍다. 대중을 상대로 간을 보고 있는 것인가”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 논리를 안 지사에게서 발견하다니 실망스럽다” “차라리 보수세력의 표가 절실하다고 솔직하게 말해라”고 비판했습니다.
안 지사가 속한 야권도 그의 발언을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안 지사가 선의로 한 말이라고 믿는다”면서도 “안 지사의 말에는 분노가 빠져있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그러나 안 지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 2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상대방의 감정과 말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대화가 된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의 모습”이라면서 “저의 이야기를 ‘국정농단 사태가 (박 대통령의) 선한 의지였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분들의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죠.
그의 해명은 여론의 반발에 더욱 불을 지핀 꼴이 됐습니다. 안 지사의 ‘선의’ 발언은 아마도 상대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좋은 의도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분노하며 매주 주말 촛불을 들었던 국민에게는 뜬구름 잡는 발언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안 지사의 말을 ‘잘못 해석한 국민 탓’으로 해석한 이들도 있었죠. 결국, 안 지사는 백기를 들고 21일 "예가 적절치 못해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중도 표를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모호한 화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안 지사는 지난달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서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또 지난 2일에는 “새누리당도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누구든 개혁 과제에 합의한다면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는 ‘대연정 파문’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심지어 안 지사에게서 ‘유체이탈’, 추상적 화법으로 유명한 박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에 염증을 느끼고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 80%에게 안 지사의 표현법은 큰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차차기’ 프레임에 가두지 말아 달라" 자신의 약점을 명확히 짚으면서도 포부를 드러낸 안 지사의 발언은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국민과 소통하고 자신의 소신, 논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말을 하고 해명을 하는 것 보다, 아예 오해할 필요 없는 분명한 발언을 하는 편이 더 낫다는 건 분명합니다.
안 지사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20%를 갱신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연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큰 격차로 2위권에만 머물까요, 아니면 치고 올라가 1위를 위협할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안 지사의 발언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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