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외교부가 부산 총영사관뿐 아니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의 위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다.
외교부가 지난 14일 부산 동구청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3일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외교공관 앞에 어떤 조형물이 설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조 대변인은 '부산뿐 아니라 서울 대사관 근처 소녀상에도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조 대변인은 이어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고 기념사업을 시행하자는 취지는 전혀 이견이 없으나 외교부 공관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을 충분히 반영해달라는 취지"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외교부가 지자체에 소녀상 이전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12월과 지난달에 이어 세 번째다. 동구청 측은 "외교부가 소녀상을 철거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하라"고 반발했다.
시민단체도 항의 성명을 냈다.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은 지난 22일 "외교부의 소녀상 이전 입장 때문에 부산시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발의조차 되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면서 "민심은 외면한 채 일본의 입장만 대변하는 외교부는 '친일 외교부'"라고 비난했다.
이에 양국이 지난 2015년 12월28일 체결된 '한일위안부합의'(한일합의)에서 이미 소녀상을 옮기기로 동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겸 수석부회장인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일본 의원들이 소녀상 이전에 대한 양국 합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강 의원은 "한일합의로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로,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인 것처럼 돼버렸다"면서 "법원이 한일합의문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외교부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또 "(한일합의가)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도 이해가 안 가는 탓에 국정농단과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달 9일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며 나사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 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 조치한 이후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도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반년이든 1년이든 또는 그 이상이라도, 소녀상 이전이 안되면 주한 일본대사의 귀환은 물론 한·일 관계의 복원도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합의 무효를 위한 대학생 대책위' 관계자는 이날 "탄핵정국임에도 외교부가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면서 "내달 1일은 삼일절이자 수요일이어서 수요집회가 끝나고 난 뒤 외교부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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