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헌법재판소가 10일 탄핵심판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지난 2013년 2월25일 취임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약 1년 남기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의 '불통' '무능' '책임회피'를 여실히 보여주는 굵직한 사건·사고를 정리했다.
△2015년-'기침에도 덜덜' 대한민국 떨게 한 감염병, 메르스
"방역 리더십 실종과 부실한 국가방역체계, 부족한 위기소통 역량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행을 불렀다"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정부의 메르스 대처에 내린 평가다.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참사'에 이어 '컨트롤 타워'의 부재를 명확히 보여줬다. 지난 2015년 5월4일 바레인에서 입국한 60대 남성이 같은 달 20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며 재난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같은 해 5월부터 7월까지 38명이 사망하고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격리된 인원만 1만6693명에 달했다. 보건당국은 국민의 불안감 조성을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정부는 과도한 불안감이 조성된다는 이유로 메르스 발병 의료기관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지난 2015년 5월20일부터 7월28일까지 정부가 배포한 191건의 메르스 관련 보도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는 책임을 부정하거나 '알려진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해명을 주로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사태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 2015년 5월 한 초등학교를 찾아 "독감이 매년 유행하고 이번에는 중동식 독감이 들어와서 난리를 겪고 있는데 손 씻기라든가 몇 가지 건강습관을 실천하면 메르스를 전혀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솜방망이 처벌'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슈퍼전파자'를 부실하게 관리, 80명이 넘는 환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겨 메르스 사태를 키운 삼성서울병원에 지난달 8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2015년-피해자가 받지 못한 사과, 정부가 10억엔에 가로챈 '위안부합의'
지난 2015년 12월28일 타결된 한일위안부합의(위안부합의)는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합의"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극단적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1000년이 지나도 역사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은 바뀔 수 없다"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취임 3년 만에 처음으로 가진 한일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를 명시한 합의문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핵심 쟁점인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대신 합의문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 측에서 재단에 10억엔(약 97억엔)을 출연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과정에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들어있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항의에 외교부는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전날 일본이 갑자기 움직이고, 연휴가 사흘이나 됐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합의에 대해 “최대한 성의를 갖고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노력했다”며 피해자들을 직접 설득하는 문제에 대해선 “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답했으나 결국 한 번도 '나눔의 집'을 찾지 않았다. 또 일본 정부는 "위안부합의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라"며 한국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고 있다.
△2016년-'남북협력 상징' 개성공단의 갑작스러운 폐쇄, 그 배후엔 최순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2월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을 중단시켰다. 개성공단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하나로 조성된 지 16년 만이었다. 당시 정부는 폐쇄조치의 이유로 북한이 같은 해 1월6일 강행한 4차 핵실험을 들었다. 개성공단 수익이 북한의 핵실험 자금으로 유용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 공단 폐쇄가 핵실험 억제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에도 북한은 핵 개발을 지속하며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경제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달 개성공단기업협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협회가 집계한 소속 회원사의 실제 피해액은 1조5000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은 다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피해액 산정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문회계법인 검증을 통해 확인한 피해액은 7800억 원이며 이 중 실제 지원하기로 한 5200억원의 96.4% 수준을 이미 지원했다는 입장이다. 개성공단 중단 배경에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씨의 비선회의에 대해 "(논의주제의) 10%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과 관련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정책과 관련됐었다"고 말했다. 통일부와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지만, 비대위 측은 지난해 11월 최씨를 '개성공단 폐쇄, 남북경협 중단의 배후세력'을 규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2016년-'쌀값 인상' 외치다 쓰러진 백남기 농민, 책임자 처벌은 '감감무소식'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한 고(故) 백남기 농민은 서울 한복판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그가 집회에 나온 이유는 '쌀값 21만원' 이라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당시 경고방송이나 예비 분사 없이 백 농민을 향해 고압 물대포를 직사했다. 가슴 아래를 쏘아야 한다는 지침도 어긴 채였다. 사경을 헤매던 백 농민은 쓰러진 지 317일만인 지난해 9월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영면했다. 서울대병원이 밝힌 백 농민의 직접사인은 '심폐정지'였다. 국가는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백남기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은 백 농민에 대한 강제 부검까지 하려했다. 유가족은 "아버지를 죽인 경찰의 손에 부검을 맡길 수 없다"며 맞섰다. 경찰은 부검 영장 강제집행을 두 차례 시도했으나 "영장 집행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과 불상사가 우려된다"며 꼬리를 내렸다. 결국 유가족은 백 농민이 숨진 지 41일 만인 지난해 11월5일에서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유가족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1월 박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백 농민의 사망 전후 청와대에 수시로 상황보고를 하고 대응책을 협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유가족은 서 원장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특검팀에 고소했으나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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