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탄핵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어나며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당시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파면 결정 불복'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대다수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즉각 자택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 11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지킴이결사대' 관계자를 비롯한 시위대는 취재진과 경찰을 향한 막말과 폭력으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60대 남성이 경찰 1명을 세게 밀쳐 넘어뜨렸다. 해당 경찰관은 막 출발하려는 차량에 부딪혀 허리 부상을 입었다.
삼성동 주민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4일간 경찰에 접수된 박 전 대통령 자택 관련 112 신고는 총 146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가 박 전 대통령 자택 옆에 위치한 삼릉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부모는 지난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취재진을 향해 '신체 주요 부위를 잘라라'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이들이 이런 욕설을 고스란히 듣는다"면서 "(집회 참가자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며 일장연설을 해서 아이들이 그 골목 지나가는 걸 무서워한다"고 토로했다. 결국, 학부모들은 지난 15일 박 전 대통령 집 앞 집회 신고를 막아 달라며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16일 경찰은 후순위 신고 집회를 금지하고 현재 집행 중인 집회는 등하교 시간에 열지 말라고 제한통고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은 잠잠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농성 참가자들 사이에 폭력 시비가 붙는 등 다시 통제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가 다가오는 만큼 이날도 어버이연합 기자회견, 대규모 집회가 삼성동 자택 인근에서 열릴 예정이다.
보수단체가 설치한 소위 '애국텐트' 바로 앞에 있는 서울 시청 내 서울도서관 역시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로 몸살을 겪고 있다. 서울도서관은 지난 18일, 지난주 토요일에 이어 2주째 임시휴관했다. 서울도서관은 집회 참가자들이 도서관 안에서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질러 운영에 어려움을 주자 휴관을 결정했다. 같은 날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제2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탄핵 반대 시위를 하다 사망한 집회 참가자들의 영결식이 함께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의 모교 서강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19일 서강대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학생회관과 학생식당에 매일 출몰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재학생과 교직원에게 박 전 대통령 옹호 발언을 쏟아내며 시비를 걸어 학교 측이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나서서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2일 '태극기 집회'에서 시위대 3명이 숨진 만큼 더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박 전 대통령이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바른정당 대선 주자 유승민 의원은 19일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보수가 궤멸할 위기에 놓인 책임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과 역사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이미 승복했다는 의견도 있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것 자체가 헌재 결정에 대한 수용"이라고 말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나오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걸 보면 불복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면서도 "사법적으로 잘못한 게 있으면 떳떳하게 심판을 받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jjy4791@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