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되지만 사랑스러운… 도자기는 운명

고되지만 사랑스러운… 도자기는 운명

기사승인 2017-04-13 11:56:45

 

[쿠키뉴스 경주=김희정 기자] 투박하면서 토속적인 철화백자는 그를 쏙 빼닮았다. 흙과 불이 자신의 삶이라는 임병철 작가는 기교를 모른다.

평생을 그래왔듯이 손수 흙을 치대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묵묵히 불을 땐다. 우직하게 걸어온 40여년의 삶이 전통가마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뎌낸 도자기처럼 빛난다.

◆ 한 방향으로 걸어온 40여년 세월
경주시의 작은 마을 호명리. 마을을 지나 좁은 길을 오르면 언덕 위에 임 작가의 작업장인 괴산요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선 마을과 마을 건너 펼쳐진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괴산요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고향은 충북 괴산이다. 조실부모한 그는 14살 어린나이에 도자기를 배웠다.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근에 있던 ‘괴산요’에서 공방 일을 시작했다. 괴산요는 고 황규동씨가 운영하던 곳이다.

희재 황규동씨는 철화백자의 거장으로 이름난 분이다. 그의 탁월한 솜씨 덕분에 이조백자의 정취와 기법이 괴산요 철화백자로 다시 태어났다.

괴산은 조선시대 철화백자의 본고장이다. 흰자기에 다갈색의 추상무늬가 환상적인 철화백자를 재현하기 위해 서울에서 고향 괴산으로 내려왔던 황규동씨의 뒤를 이은 사람이 임 작가다. 수백여 명의 제자들은 그곳을 스쳐 다른 길로 갔지만 수제자 임 작가는 지금까지 괴산요를 지켜왔다.

그가 경주에 온 것은 1989년, 작업장 ‘괴산요’를 마련한 것은 1992년이다. 이곳에서 도자기 조각사 김영보씨를 만나 결혼했고, 28년을 살았으니 그에게 경주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 소박하고 풍요로운 철화백자
그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숨결이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런 노력으로 19살인 1982년 충북대표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 도자기부문 동상을 차지했다.

“꽃다발을 목에 걸고 무개차에 올라 청주 시내를 누비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나온 힘든 시간들은 눈 녹 듯 모두 사라집니다.”

그는 특별한 기교를 모른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몸에 익힌 대로 정성을 다할 뿐이다. 흙을 치대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며칠씩 돌을 갈아 유약에 넣는다. 장작을 일일이 쪼개고 하루 종일 묵묵히 불도 땐다.

“장작 가마의 변화무쌍함이 좋아요.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그릇이 없잖아요. 같은 흙으로 만들고, 같은 물레로 빚고, 한날한시에 가마에 들어갔다 해도, 색감도 모양도 다 제각각이죠. 날씨나 계절에 따라서 불기운에 따라서 저마다의 그릇들이 나와요. 가마를 열 때마다 신비롭죠.”

흙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는 도자기가 자신의 운명이라 말한다.

“흙을 캐고, 잘게 부수어 토물하고 반죽하는 일은 물론 발로 물레를 돌리고, 돌을 캐다가 절구에 곱게 빻아 유약을 만드는 일들이 여간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고 불을 때는 일은 더 고되고 외로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흙을 만지는 일이 좋았고,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의 색과 질감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특히 오묘한 빛깔과 투박한 철화백자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 물레 앞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
청화나 백자와는 달리 민요에서 생활용품으로 구워졌던 철화백자는 토속적이고 서민적이다. 그의 도자기가 딱 그렇다.

“물레 앞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예요. 그 앞에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에요.”

부인인 김영보씨가 그에 대해 정의 내린 말이다.

그 스스로도 인정한다. 물레 앞에 앉았을 때가 가장 편하다고. 이 때문인지 그의 물레에서 태어나는 도자기도 그를 닮아 편안하다. 화려하고 강렬하기 보다는 투박하고 순수하다.

“전통불가마에서 나온 도자기에 차를 마시면 맛이 더 좋습니다. 직접 빚은 도자기에 차를 마시는 일은 가장 큰 호사이기도 하지만 성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차를 즐겨 마시는 그는 따뜻한 잔을 감싸 쥐어도 보고, 차를 부어 맑은 빛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흙 묻은 손에 든 찻잔이 그의 마음처럼 소박하면서도 풍요롭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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