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차오르면, 그는 차를 우린다

달항아리 차오르면, 그는 차를 우린다

기사승인 2017-04-19 11:54:47

 

[쿠키뉴스 성주=김희정 기자] 가야산 속 계곡을 거슬러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굽이 길을 오르면 뭉게구름 솟은 하늘 아래 가야산이 앉았고 그 아래 심산 김종훈 작가의 심산도요가 자리 잡고 있다.

심산도요, 그곳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달항아리, 차 우리는 다관, 찻물을 담는 찻사발이 자연과 함께 놓여있다.

“흙을 찾아서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흙이 없으면 도자기도 없으니 작품에 맞는 흙을 찾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호 ‘심산’의 ‘심’은 ‘찾을 심(尋)’이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 도자기라면 그 원재료인 흙을 찾아가는 길은 자신의 본성을 찾는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지 21년째다.

 

 

처음에는 포장되지 않은 흙길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는 아랫마을에 집 한 칸 얻어 살면서 지금의 자리에 심산도요를 지었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 대구에서 10년 정도 작업을 했다. 고향 영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붉은 벽돌 공장에 쌓인 붉은 흙을 주무르며 놀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을 무렵인 1985년 조각가 친구의 권유로 도예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토인 백영규 선생에게 배우며 경북무형문화재 백자장 전수자가 됐다.

 

◆ 위로의 달항아리
심산도요에 들어서면 누구나 그의 앞에 놓인 달항아리에 눈길이 간다.

그가 생각하는 달항아리는 평화와 위로다.

그는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흙으로 빚은 달항아리는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위로를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백색의 흙을 찾아야 한다. 태토의 하얀 그 색과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찾은 흙으로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만든 다음 그 두 개를 붙여서 하나의 완성된 모양을 만든다.

가마에서 불기운을 받은 달항아리는 그의 손을 떠난다. 이때부터는 자연에게 맡긴다. 완성된 달항아리의 표면에 드러나는 태토의 백색, 그리고 자연스러운 균열이 그 매력을 더한다.

“기계로 찍어낸 완벽에 가까운 대칭과 정형의 모습보다는 비정형의 모습이 달항아리의 매력이지요. 상하좌우의 대칭이 비정형적으로 이뤄지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야 말로 달항아리 최고의 매력입니다.”

심산도요 창 옆에도 달항아리가 있다. 햇빛이 비치는 부분이 밝게 빛나고 윤곽선도 흐리다. 그늘진 부분의 윤곽선은 뚜렷하면서 어둡다. 창으로 드는 햇볕의 각도와 질감이 시시각각 변함에 따라 달항아리의 그것도 순간마다 달라진다.

실제 밤하늘의 달도 그렇다. 계절마다 때마다 모양과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차고 비워지는 달처럼 달항아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때가 되면 차고 비워지는 달을 닮았다.   

◆ 순백의 찻사발
달항아리 옆에는 다관과 찻사발이 놓여 있다. 차를 우리는 도구인 다관과 우린 찻물을 담아 마시는 찻사발이 달항아리와 제법 어울린다.

설백색의 태토를 1300도의 고온으로 완성시킨 백자다관은 정제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녔다. 치자 빛 사질 흙(우리나라 찻사발을 만드는 흙으로 모래성질이 포함돼 있음)으로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고 숙성 후 단숨에 빚어 만드는 찻사발은 순박한 시골 농부의 손을 닮았다.

“고온의 열기를 견딘 후 표현되는 게 백자다관의 흰빛입니다. 설백색 태토의 본성을 그대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차가 우려지는 그 향기가 순백의 빛깔과 함께 합니다.”

“찻사발의 묘미는 자연스러움이지요. 찻사발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빛깔과 태토의 거친 질감과 꾸밈없는 모양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가야산 아래, 김종훈 작가의 심산도요에는 달항아리와 찻사발, 그리고 달이 머문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느새 가슴 한 쪽 달항아리가 들어찬다. 이윽고 달도 떴다.

그는 지금이 찻물을 우리기 좋은 때라고 했다. 다관 주둥이에서 차향이 피어나면 찻사발을 데운다. 함께 따뜻한 차 한 모금 나눌 누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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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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