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철 기자 ▷ 네. 안녕하세요. 심유철 기자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네. 오늘 제시해 주실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심유철 기자 ▷ 네. 오늘 제가 제시할 키워드는, 대피할 수 없는 대피시설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네. 지난 가을 일어난 경주 지진 이후, 대피시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시설도 부족하고, 상태도 엉망이라니, 한 번 자세히 짚어봐야겠어요. 심유철 기자, 어떤 면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가요?
심유철 기자 ▷ 일단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의 경우, 민방위 주민 대피시설이 매우 취약한 상태입니다. 지방 자치 단체는 시, 군 내 지하시설의 부족으로, 대피소 지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 지하시설이 있어야 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는 거군요?
심유철 기자 ▷ 네. 민방위 기본법 15조에 따르면, 중앙관서의 장, 지방자치 단체장들은 주거용 단독주택 외 지하층을 두고 있는 건축물을 비상 대피시설로 지정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지방의 경우, 지하시설을 갖춘 건축물이 희소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장소들이 대피소로 지정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장소들이 대피소로 지정되었다고요? 대체 어떤 곳들을 지정했기에 그런 건지 궁금하네요.
심유철 기자 ▷ 국민 재난 안전 포털에 따르면, 경북 성주군은 단란주점과 폐업한 노래방과 다방 등 5곳을 유사시 대피시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에서 그런 대피시설 중 한 곳인 성주군 용암면 목마다방을 찾았는데요. 그 곳 내부는 매캐한 먼지로 가득했고요. 컴컴한 내부에는 6개의 테이블과 30여개의 소파 등 다방에서 사용하던 집기가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다방이 현재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건가요?
심유철 기자 ▷ 네. 다방 건물주의 말에 따르면, 목마다방은 영업을 안 한 지 10년 이상 됐고요. 이미 물과 전기도 끊긴 상태라고 합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다방이라는 장소가 대피소로 지정된 것도 놀라운데, 영업도 하지 않고 있다니. 정말 만약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주변 시민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주변 사람들은 그 곳이 비상 대피시설이라는 걸 알고는 있나요?
심유철 기자 ▷ 아니요. 전혀 몰랐죠. 그 사실을 들은 성주군민들은 부적합한 시설이 대피소로 쓰인다는 사실을 놀라워했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 대피시설로 지정된 영업을 하지 않는 다방. 이건 좀 문제가 심각해 보이는데요. 심기자, 다른 대피소 상황은 어떤가요? 다 이렇지는 않겠죠?
심유철 기자 ▷ 별 다를 바 없습니다. 또 다른 대피소로 지정된 곳도 단란주점인데요. 문제는 그 곳은 영업 중이긴 하지만, 오후 6시 이전에는 문이 닫혀 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대피소로는 부적합하다는 거죠.
김민희 아나운서 ▶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야 하는 대피시설이 밤에만 열려있다뇨. 사건 사고가 밤에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참 답답한데요. 지방의 경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대피시설 지정이 많은가요?
심유철 기자 ▷ 네. 그래서 문제입니다. 충남 공주시는 지난 2003년부터 위험물 저장시설인 주유소를 대피시설로 지정해 운영해왔고요. 경기 파주시는 29㎡라는 협소한 크기의 파평초등학교 지하시설을 대피소로 지정한 상태거든요. 모두 부적합하다고 볼 수 있죠.
김민희 아나운서 ▶ 대피시설로 적합하지 않은 곳을 대피시설이라고 지정해 놨군요. 그럼 혹시 아예 대피시설이 없는 곳도 있나요?
심유철 기자 ▷ 그렇습니다. 국민재난안전포털에 게재된 대피시설을 분석한 결과, 전국 1190곳의 면 지역 중 982곳에서는 주민 대피시설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결국 그건 비상사태 발생 시, 주민들이 몸을 피할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김민희 아나운서 ▶ 대피시설이 왜 없는 건가요?
심유철 기자 ▷ 주민 대피시설은 법적으로 읍, 동 이상에만 설치하게 돼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피시설이 없는 면 지역 주민들은, 유사시 가까운 읍, 동 대피소로 가야 하는 겁니다. 또 지역 내 대피소가 있더라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주민의 이동 거리, 수용 인구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지정된 대피소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어떻기에요? 구체적으로 좀 알려주세요.
심유철 기자 ▷ 경기 화성시 우정읍 상황을 보면요. 현재 읍내 아파트 2곳을 대피소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각각 면적은 1459㎡와 2623㎡로 총 4082㎡ 규모고요. 대피소 면적 3.3㎡ 당 4명을 수용한다는 국민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우정읍 내 대피소는 약 4947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우정읍의 인구는 2016년 2월 기준, 1만 8010명에 달합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인구의 1/4밖에 수용할 수 없는 대피시설이네요. 수용인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지하 시설이 있는 곳을 지정해 놓았나 봐요. 그리고 주민의 이동 거리도 문제가 된다고 하셨어요. 대피시설까지 얼마나 먼가요?
심유철 기자 ▷ 우정읍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경우, 지금 사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대피소까지 8㎞가 넘습니다. 차로 이동해도 10분 이상 걸리죠. 결국 유사시 대피소로 이동하는 동안 겪게 될 위험이 더 클 수도 있는 상황인 겁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제가 심각해 보이는데요. 심유철 기자, 대피시설 지정이 이렇게나 어려운 문제인가요?
심유철 기자 ▷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일단 지방의 경우, 시, 군 내 지하시설이 거의 없고요. 또 사유시설을 대피소로 지정할 경우, 건물주의 동의를 받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영업을 하는 상가 건물일 경우, 지속적인 관리 역시 힘들고요. 하지만 지자체가 손 놓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인데요. 쿠키뉴스의 취재 사실을 안 성주군청은, 단란주점, 폐업 노래방, 다방 등 부적합 대피시설 5곳에 대한 지정을 해제한 상태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부적합 대피시설 지정을 해제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에 따른 대책이 있어야 하잖아요. 제대로 된 대피시설 지정도 바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심유철 기자의 키워드 포착. 오늘은 대피시설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지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지난 9월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지진 공포가 커지고 있어요. 심기자, 지진 대피소 지정은 잘되고 있나요?
심유철 기자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국내에는 지진 대피소 지정과 관련한 법 규정이 없어서,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지진 대피소를 지정하고 있는데요. 지진 대피소 가운데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는 곳을 왜 지진 대피소로 지정하나요? 상황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좀 알려주세요.
심유철 기자 ▷ 서울시는 526개 지진 대피소를 지정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초, 중, 고교입니다. 학교 내진설계 부실 문제는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 있죠. 교육부에 따르면 서울 초, 중, 고교의 내진설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6.6%로, 전국 기준인 23.8% 대비 소폭 높은 수준이고요. 만약 지진이 발생해 인근 학교로 이동한 주민들이 내진설계가 안 된 건물로 진입하면, 건물 붕괴로 주민들이 다치는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서울이 그렇다면, 지방의 경우 더 우려될 수밖에 없는데요. 심기자,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떤가요?
심유철 기자 ▷ 올해 대형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경북 경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은데요. 지진 대피소로 학교가 지정돼 있는데, 그 역시 내진설계가 안 된 곳이 많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상당히 우려스럽네요.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에서 여진 소식이 들려오잖아요.
심유철 기자 ▷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발생한 지진은 총 245회입니다. 지난해 발생한 44회 대비 457% 급증한 것이자, 1978년 이후 가장 많은 지진이 발생한 것인데요. 일부 사람들이 지진을 느낄 수 있는 규모 3.0 이상 지진도 올해 33회 발생해, 197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진 발생이 늘고 강도가 강해지지만, 지진 발생지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지진 대피소 확인이 쉽지 않은 점도 문제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지진 대피소 확인이요? 대부분은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확인하지 않을까요?
심유철 기자 ▷ 아닙니다. 경주 지진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강한 지진이 발생하면, 인터넷과 같은 통신이 단절될 수 있죠. 그러니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이용해 지진 대피소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은 지진이 발생하는 실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지진 대피소 표지판이 설치돼야 합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그렇네요. 통신이 단절된 상황에서 대피소를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하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살펴봐야 할 곳이 바로 접경지역의 대피시설이 것 같아요.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 주민들은 아무래도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잖아요. 다른 지역보다 대피시설 지원이 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심유철 기자 ▷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북한의 위협은 여전한데 경기도의 내년도 접경지역 주민 대피시설 확충 사업비 등은 올해보다 대폭 줄어들 예정이거든요. 접경지역 주민 대피시설 2곳 확충비로 편성한 금액은, 올해보다 절반이 줄어든 액수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왜죠? 접경지역의 주민 대피시설이 충분한가요?
심유철 기자 ▷ 아닙니다. 김포, 파주, 연천, 동두천, 포천, 양주 등 접경지역은 아직 주민 대피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반 민방위대원 화생방 방독면 보급률은 28.7%에 불과하고요. 비상 급수시설 확보율도 아직 91.4%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아직 시설도 충분치 않고, 북한의 위협도 계속되고 있는데, 왜 관련 사업비를 줄이는 건가요?
심유철 기자 ▷ 올해 당초 4곳을 새로 만들 예정이던 접경지 주민 대피시설을 북한의 연천 포격 도발 등에 따라 10곳으로 대폭 늘렸기 때문에, 정부가 내년 해당 사업 국비 지원액을 줄여 전체적인 사업량이 축소됐다는 겁니다. 또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접경지 시군들의 관련 사업비 부담이 적지 않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 문제가 많아 보여요. 원래 접경지역의 대피시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부분이 있을 텐데요
심유철 기자 ▷ 주민 대피시설은 전쟁 뿐 아니라 재난 등 비상시에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인구가 적은 면 단위라도 지정되어야 합니다. 공공 대피시설은 대피한 주민들이 10일 정도 머무르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대피소 내에 물과 식량, 모포 등 비상물자가 구비돼야 하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 네. 결국 관련 기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국민 안전처는 이런 상황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나요?
심유철 기자 ▷ 국민 안전처는 대피시설의 실무는 각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일이라며 책임을 피하고 있습니다. 또 지하시설이 부족한 지자체에 대피시설 관련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뜻도 표명했는데요. 북한은 주요한 국가 산업기지, 군부대 등을 공격하기에 면 단위는 표적이 될 위험이 적다며 북한 접경지역과 서해 5도 등 15개 시, 군을 제외한 지자체에는 정부 지원 대피시설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 그렇게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면,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목숨은 누가 챙기는 걸까요? 심유철 기자의 키워드 포착. 씁쓸한 마음으로 마칩니다. 하루 빨리 달라진 대피시설에 대한 취재 내용 듣고 싶네요. 심기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유철 기자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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