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저널리스트는 누군가를 상처 입힐 가능성이 많다. 때문에 혹자는 덕을 쌓으라고 말한다. 탐사를 한다 치면 상처주거나 상처 입을 확률은 더 커진다. 이런 이유로 저널리스트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기자와 취재원, 그리고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정헌법 1조라는 강력한 법 앞에 유명무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취재원 보호를 법제화해두었다. 지난 1896년 언론인의 취재원 보호를 규정한 ‘방패법’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법정에서도 취재원을 밝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정보의 자유유통에 관한 법률’도 마련했다.
그리고 6년 뒤 에드워드 스노든의 쓰나미급 폭로가 이어진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영국의 GCHQ 등이 자행한 개인정보 무단수집 및 사찰을 만천하에 알렸다. 과거 애슐런보다 몇 곱절 영악하게 ‘진화한’ 프리즘(PRISM)의 위력은 경악스러웠다. 이 가공할 프로그램은 전 세계의 직위여하를 막론한 개인들의 민감한 정보를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노든의 폭로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세 명의 조력자가 있었다. 로라 포이트라스와 글렌 글린월드, 미카 리.
로라 포이트라스는 스노든의 폭로 전 과정을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에 담았다. 다큐 초반 그녀는 스노든에게 이메일로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가’라고 묻는다. 대답이 걸작이다. ‘로라, 당신이 내게 와준거에요. 시티즌포.’ 몇 년 후 나는 지인을 통해 숨은 조력자 중 한 명인 미카 리와 간접적으로나마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이탈리아 해킹팀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던 때였다. 그에게 받은 인상은 퍽 강렬했다. 특히 제보자(취재원)를 보호하려는 이들의 종교와도 같은 신념은 인상적이었다.
현실로 돌아온다. 서울대병원에 대한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죽어야 산다’는 한 기사 제목처럼 서울대병원 내부는 심각하게 곪아있다.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이유는 하나다. 대다수의 건실한 이들이 엉망인 소수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이 마음에 닿았을 뿐이다. 딴 뜻이 없기 때문에 서울대병원을 왜 그렇게 ‘까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축구공도 아닌데 까긴 뭘 까.
서울대병원은 명실 공히 국내 최고 국립대병원이다. 명성이나 권위, 실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비판 및 고발기사 ‘꺼리’가 수두룩하다. 너무 많다. 보도를 하면 개선보다 제보자 색출 및 괴롭힘이 이뤄진다. 이런 것들이 사실 새롭지는 않다. 그래도 취재원 보호는 고민이 된다. 병원과 의료계의 특성상 ‘찍히면 죽는다’는 의식이 강해 쉬쉬하는 경향이 유독 짙은 점도 마음에 걸린다.
굳이 스노든을 떠올리지 않아도 조직의 크고 작은 문제를 쥐고서 기자를 찾아오는 이들의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희생을 각오한 얼굴이 있다. 그렇게 기자와 언론에게 ‘단독’이니 ‘특종’을 안겨주어도 제보자에게 돌아오는 건 뻔하다. 자성보다는 보복에 익숙한 군대식 조직 논리. 이를 거스른 ‘배신자’에 대한 ‘처단’은 참으로 끈질기고 지독하다. 류영준 교수,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이지문 전 중위, 현준희 전 감사원 공무원, 김용철 변호사, 국가정보원 직원 정 아무개 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대병원 모 교수의 녹취록을 확보했고 보도했다. 해당 교수는 녹취록 출처를 묻거나 전문이 아니니 왜곡되었다는 논리를 폈다. 원문을 공개하면 애먼 사람에게 보복이 가해질 가능성이 컸다. 속 시원하게 ‘까면’ 기자야 속이 편하다. 다만 광의의 취재원들이 죽어나갈 뿐. 이에 대해 한국언론정보학회를 비롯해 여러 언론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언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같은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여기서 끝이면 모를까, 또 다른 이로부터 정치적인 태클이 들어오기도 한다. 쪼르르 가서 고자질 하고 찌른다. 태클도 선수를 봐가면서 걸어야 한다. 아마추어적이다.
나 때문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취재원일 경우에는 미안하고 괴롭다. 돈 많고 힘 있는 아저씨들에겐 미안하지 않다. 취재원을 보호해줄 법이 우리에겐 없다. 제대로 보도하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그럼에도 아저씨들은 흥미롭다. 관심이 간다. 마구 기사를 쓰고 싶어진다. 곧 다시 시작될 보도를 앞두고 아저씨들에게 한 마디 전하고 싶다.
타협,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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