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이 의결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마침내 국정 운영 추동력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26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오전 추경안이 천신만고 끝에 통과됐습니다. 정부가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한 지 45일만입니다. 이날 한국당 의원들이 단체로 퇴장하면서 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1시간 넘게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이 협조한 뒤에야 재석 의원 179명 중 찬성 140명, 반대 31명, 기권 8명으로 추경안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모두 추경안 통과 지연에 책임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당의 반발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지만, 민주당의 '집단 불참'은 예상 밖이었다는 것이죠. 국민 역시 여당 의원 불참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합심해서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추경안 통과가 민주당 120석, 국민의당 40석, 정의당 6석으로 무난히 150명 이상 참석, 절반 이상 찬성이라는 의결 조건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 추경은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이나 다름없습니다. 민주당은 추경안 통과에 사활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추경안 합의가 불발되자 "국민의 절박한 요구인 추경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국정 운영을 마비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절박했던 것은 원내대표뿐이었던 걸까요. 당 소속 의원 26명은 공식 의정활동이나 개인일정 때문에 본회의에 불참했습니다. 26명 가운데 24명이 본회의 당일 해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 중 국회 상임위나 각종 포럼 등 공식 해외 출장을 떠난 경우는 18명이었습니다. 6명은 개인 일정으로 해외에 나가 있었습니다. 안민석 의원은 최순실 일가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려 독일을 방문 중이었고요, 이용득 의원은 장인, 장모와 유럽 효도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체류 중이던 우상호 의원은 한국당 집단 퇴장 전 군대 간 아들을 면회하러 출발했습니다. 송영길 의원은 광주 강연을 가던 중 정족수 미달 소식을 듣고 국회로 발길을 돌렸으나 이미 늦었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즉각 민주당의 안이한 태도를 비난했습니다. 바른정당은 논평을 통해 "120석의 거대 여당이 일차적으로 의결 정족수를 위한 긴장감을 갖고 책임을 져야 했다"면서 "자기 당 소속 의원들조차 단속하지 못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했으니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민의당도 "추경안 통과 과정에서 나타난 여당의 무능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여당 의원들의 참여 저조로 본회의 통과가 난항을 겪었으니 앞으로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당내 '정치개혁 준비된 민주당 권리당원 모임'은 22일 성명서를 내고 표결 불참 의원들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원내수석부대표 출신의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회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한 의원들이나 표결 참석을 거부하는 자들이나 눈 뜨고 볼 수 없는 작태들"이라고 비판했죠. 문희상 의원도 "추경안 처리 과정은 집권 여당으로서 기본이 안 된 문제점을 노출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추미애 당 대표는 24일 결국 공식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비난 여론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반응입니다. 효도 관광을 떠난 이 의원은 "권리당원들의 강한 공분이 있습니까? 죄송하네요. 그런데 님들은 어떤 정치를 원하세요?"라며 "저는 획일적이고 군대조직 같은 각이 선 정치는 원치 않습니다. 노인네들을 실망시키며 모든 걸 취소해야 했을까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금태섭 의원은 페이스북에 비난 글이 잇따르자 "당에서 중간에 귀국하라는 요청이 있었으면 당연히 돌아갔겠지만 그런 요청은 없었다"면서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저도 전화드려서 왜 함부로 욕을 하시는지 따지고 싶다"고 말했죠.
이번 추경안 통과에서 승자는 없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가 너무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렸다. 여도 야도 저는 패자라고 본다"면서 "민생이 어려운데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를 운영한다면 아마 국회의 존립 의의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현재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50%를 웃돌고 있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얻은 만큼 더 긴장해야 하지만, 민주당은 '집안 단속조차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민주당의 독선'을 비판하는 야당에게 약점을 또다시 내보인 셈이죠. 추경안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정책 통과가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당 내부의 결속 없이 야당에게 '동참해달라'는 요구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민주당의 반성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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