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같은 소리①] 최저임금도 못 받는 연예계 사람들

[열정페이 같은 소리①] 최저임금도 못 받는 연예계 사람들

기사승인 2017-09-11 07:00:00


편집자 주 : 대중문화는 우리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영화산업 하나만 떼놓고 봐도 1년 극장 관람객 입장권 매출액은 1조 5000억원(2013년 기준)에 달하죠. 현재 한국에 사업자로 정식 등록돼있는 영화 제작사는 약 2000여개. 그만큼 규모가 큰 산업이며, 종사자도 엄청납니다. 배우들은 영화 한 회에 억 단위 개런티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외의 대중문화 종사자들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요?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그 멋진 광경 뒤에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신조어 중 ‘열정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로지 열정을 위해서라면 적은 돈도 개의치 않는 젊은 창작자들을 이용해, 반대로 ‘열정’을 핑계로 정당한 임금 지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대중문화산업계에서 ‘열정페이’ 사례를 찾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예술인복지법 개선을 위해 나섰지만 현업 종사자들은 “제대로 대우 받으려면 멀었다”고 고개를 내젓습니다. 정당한 임금을 지급시키려 만든 제도와 ‘열정페이’뿐인 실무 간의 간극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산업 현장? 종사자들의 인식? 교육 환경? ‘열정페이 같은 소리’는 모두가 즐거워할만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정작 즐겁지 않은 대중문화 종사자들을 인터뷰하고 문제점을 알아봅니다. 현업 종사자들이 원할 경우 인터뷰는 비실명 처리됩니다.

“최저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를 줄이는 일이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온다 해도 먼 나라 얘기만 될 뿐이다” 2017년 국회 입법조사처보 여름호에 실린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의 말이다.

지난 7월 16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753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16.4%(1060원) 상승하는 역대 가장 높은 인상폭이다.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환호했고, 기업들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웃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바로 임금 사각지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다. 방송작가, 무대 스태프, 매니저 등 화려한 무대 뒤에 종사하는 문화 예술계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 중 하나다.

문화 예술계의 어두운 이면이 세상에 알려진 건 한 방송작가의 죽음을 통해서였다. 2011년 2월 故 최고은 작가는 생활고로 수일 째 굶다가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최 작가가 집주인에게 남긴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막 메모가 뒤늦게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방송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문화 예술계의 생계유지 논란이 커지자, 그제야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국회는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했다. 업무 특성상 불규칙하게 임금을 받는 문화계 종사자들을 사회보장 체계 안에 편입시켜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최고은법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 창작준비금’ 제도를 도입했다. 긴급한 상황에 내몰린 예술인들에게 1년에 30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또 계약서를 쓰지 않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정착시키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결국 최고은법도 제2의 최고은이 등장하는 걸 막지 못했다. 2015년 6월 생활고를 겪던 연극배우 김운하가 고시원에서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7년 동안 문화일보에 연재된 소설 ‘강안남자’의 일러스트를 그렸던 난나 작가가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지난 7월에는 한 지방방송국의 라디오 작가가 생활고를 이유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故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알려진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문화 예술인을 둘러싼 상황이 열악한 건 그대로다. 지난해 3월 방송작가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644명의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면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15명 중 1명꼴이었다.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는 46%, 4대 보험 가입자는 1~2%에 불과했다. 특히 막내작가의 평균 시급 3880원에 그쳤다. 올해 최저시급 6030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임금 미지급 관행도 계속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인복지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예술인복지법의 불공정 행위 신고 규정이 만들어진 후 신고 된 불공정 행위 283건 중 261건(92.2%)이 임금 미지급이었다. 그 중 100만 원 이하의 금액을 미지급한 것이 25.6%로 가장 많았다. 10만원, 15만원의 임금을 받지 못해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2017년에도 여전히 임금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예술인복지법 혜택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자격 조건이다. 창작준비금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해야 하는데 최근 3년 동안 자신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연간 120만원 또는 3년간 36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린 사실을 자신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가난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소득 금액 증명, 건강 보험 납부 여부 등 복잡한 행정처리 과정을 거쳐야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배정된 예산도 많지 않다. 지난해 300만원의 창작준비금을 지원받은 예술인은 4000명에 그쳤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된 예술인이 4만2204명, 정부가 추산하는 전체 예술인 규모 50만명을 생각하면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는 격이다.

임금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것도 문제다. 4대 보험을 적용받고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은 많지 않다.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권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구두 계약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임금 체불 문제를 겪어도 노동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민사 재판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 특성에 따라 근무시간과 장소, 관리 감독을 하는 주체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전업이 아닌 다른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노동자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남아 있는 것도 문제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인식 때문에 정확한 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최저임금도 안되는 적은 임금을 주면서도 생색을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회사나 개인 사정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임금 지급을 늦추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주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기도 한다. 장을 보거나 청소를 하는 경우부터 은행 업무를 대신 보기도 한다. 막내, 혹은 여성들에겐 당연하다는 듯 그런 일을 강요한다.

정부는 예술인복지법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예술 활동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도입과 예술인 표준계약서를 개발·보급하는 데 힘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어 지난달 30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문체부·교육부 합동 핵심정책토의에서는 실태조사를 통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및 스태프 간에 불공정 거래, 부당근로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 일반 금융 지원을 받기 어려운 예술인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술인 복지금고'을 조성하고, 저작권 수익분배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설명했다.

제도 개선의 움직임은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문화 예술계 모두의 인식이 바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제2의, 제3의 최고은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MBC·KBS 노조가 5년 만에 총파업을 개시했지만, 공연, 영화, 방송, 가요 등 문화 예술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노조를 만들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거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언론에 인터뷰가 실리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임금 체불, 임금 미지급, 계약서 미작성 등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시달리며 버텨내고 있다. 무대의 조명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어둡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할 때다.

(열정페이 같은 소리②에서 계속)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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