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칼럼] 확률형아이템과 구별짓기

[산업칼럼] 확률형아이템과 구별짓기

기사승인 2017-11-14 09:14:31


‘믿고 거르는 X사 게임’, ‘게임의 탈을 쓴 도박’에서 확률형아이템(이하 확률템) 유저에 대한 동물 비하 등 확률템에 대한 분노는 포털, 웹진, 커뮤니티 어느 곳을 가릴 것도 없이 광풍으로 몰아쳤다. 멀게 잡으면 10년 가깝게 잡아도 5년 동안 쉬지 않고 몰아친 유저들의 분노는 그 표적이 된 게임사들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도 남을만큼 충분히 오지고, 지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확률템을 주요 비즈니스모델로 하는 게임사가 먼지가 되기는커녕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이란 흥겨운 팡파레를 연이어 울리고 있다. 2017년 3분기 NC 7천억, 넥슨 6천2백억, 넷마블 3분기 누적 1조8천억. 입이 떡 벌어진다. 이런 실적에 고무된 N사들은 여론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M'과 ‘레볼루션’ 시리즈의 신작들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저들이 저렇게 난리인데, 정작 매출과 신작은 난리를 치는 그 방식대로 하겠다니 정말 불가사의(不可思議)다. 시장의 논리로 설명이 안 되니 별별 공상이 다 떠오른다. 혹시 게임서버를 위장한 엄청난 비트코인 채굴시설을??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커뮤니티와 포털에서 확률템에 비난을 하는 이용자들은 핵심 소비자들이 아니다. 확률템은 이들과 구분되는 숨은 시장과 핵심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단서는 최근 출시되는 대작 게임들의 광고모델들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젊은 시절 정액제 다중접속게임(MMORPG)을 경험했고, 현재는 상당한 과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중년 남성층이다. 이들은 정치-경제의 주류 위치에 있지만 가정, 사회, 직장 어느 곳 한곳에서도 그들의 역할과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들이다. 흔히 ‘린저씨’라고도 불린다.

린저씨들은 소소한 과금이나 무과금으로 이용하던 전통적 유저들을 중심부에서 조용히 밀어냈다. 밀려난 전통 유저들은 확률템 게임을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부정하며 여전히 주류로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이들에게 이상적 게임은 과거 어린 시절 경험했던 초기 온라인게임이나 콘솔 게임들에 머물러 있다. 마치 피터팬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게이머에 국한되지 않는 현대사회 보편적인 현상이다. 1983년 미국심리학자 카일리(Kiley)는 어른이기를 거부하며 어린아이처럼 보호받고 싶은 현대인의 증후군을 ‘피터팬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이 증상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피터팬증후군이 심한 사람일수록 정부와 사회가 대신 나서서 약한 자신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레토릭이다.

역설적이게도 전통적 유저의 비난은 린저씨들을 아주 돋보이게 만드는 문화적 배경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올 추석연휴에 사상최대 해외여행객이 몰렸다고 한다. 공항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을 비난한다. ‘어려운 경제에 흥청망청 과소비를 한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이 조상을 나몰라라 한다’와 같은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난이 내년 추석연휴 해외여행객들을 위축시킬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난은 부정적인 상징이 아니라 보통사람들과 다른 ‘클라스’라는 것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기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는 이런 현상을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고 불렀다. 적어도 린저씨들에게는 확률템이 아주 만족스러운 구별짓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듯하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저 거금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PC판매가 내리막길에 접어든지 5년째 지속되고 있다. 요즘들어 스마트폰 판매도 정체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 사이 게임만 변함없을 리 만무하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게임사들은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발굴했다. 용돈규모의 청소년 생활문화게임이 아니라 중년들에게 어필하는 사치품 게임이 등장한 것이다. 아쉽게도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젊은층 단골들이 찬밥신세가 되었다. 충분히 억울해할 일이다.

글=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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