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는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를 전제로 합니다. 취재 욕심이 앞서 왜곡된 첩보 수준의 보도행태는 한 개인과 공인의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예비역 육군소장 신현배 전 경기도 재향군인회장(69·사진)은 지난 3년이 악몽같다. 긴 시간 그는 언론중재위와 민사소송의 신청인과 원고로서 법정에 섰다. 지난 10월 상고가 각하되면서 끝났지만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경기재향군인회장이 수천만원 횡령’, ‘경기재향군인회장 공금횡령 정황’. 지난 2015년 1월과 2월, 이런 제하의 기사가 경기지역 모 일간지 사회면과 인터넷판에 한 차례씩 보도되면서다. 그 반향은 컸다.
보도 이후 그는 변호사의 조력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했다. 전력을 바쳤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1, 2심 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일부 승소에 만족해야 했다.
1. 2심 법원은 기사의 공익성이 인정되고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라며 원고 측의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검찰조사 결과 횡령액수가 보도한 5216만5013원이 아닌 142만920원에 불과하다며 ‘추후보도문’만을 주문하는데 그쳤다.
“사실 1심 원심대로 된 거죠. 2심은 원심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고, 3심은 문턱에서 막혔으니까요. 3년여 소송에만 매달려 살았는데…”
그는 야전사령관 출신답게 마치 전쟁이 끝난 황폐한 전장에 자신의 심정을 비유하며 말끝을 흐렸다.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상처뿐인 소송이 너무 허탈하고 씁쓸한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제 마지막 법적 절차를 남겨두고 그도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법원이 2심 판결에서 주문한 ‘추후보도문’을 피고 측이 86일간 지체 게재하면서 이행강제금 2580만원에 대한 유체동산 압류절차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 측 신문사에 법원의 집달리가 법적 절차에 따른 빨간 차압딱지를 붙이는 집행이 이뤄지는 것이다.
2심 선고일이 지난 8월 18일, 피고 측의 판결문 송달일자가 9월 9일로, 7일 이내 게재해야 하는데 피고 측 신문사가 뒤늦게 12월 12일 판결 주문대로 추후보도문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연내 이 동산압류건에 대한 집행이 이뤄진다는 법원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도 직접 현장에 나가려고 합니다. 긴 소송이 이 절차로 마무리되는 거죠. 피고 측 신문사에 집행계획서를 이미 보냈습니다.”
그도 마음이 착잡한 듯했다. 극히 드문 사례여서 집행 이후 그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이처럼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법적 투쟁을 벌여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 보도 당시 취재기자가 상대 측 제보에만 의존해 보도한데다, 오보에 따른 추후보도문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군인’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그는 당시 저간의 경기재향군인회의 내부사정을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이런 보도가 도저히 나올 수도 없다고 항변했다. 가슴에 한이 맺힐 정도로 화병이 나서 요즘도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제25대 경기재향군인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예비역 육군소장이 시⋅도 회장을 맡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거죠. 막상 취임해보니 조직과 경영관리가 엉망진창이더군요. 한숨밖에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는 취임 즉시 개혁위를 꾸려 105일 동안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나갔다. 특히 인적 쇄신에 주력해 5~6명의 직원들은 책임을 물어 내보냈다. 그런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고 비젼을 제시하는 600쪽 분량의 백서도 출간했다. 어느 누구 엄두도 못낸 것을 그가 맡자마자 조직을 일대 혁신시킨 것이다.
혁신은 그의 3년 임기 내내 이뤄졌다. 하지만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느닷없는 ‘수천만원 횡령’이란 기사가 터져나왔다. 선출직이라서 재선 도전을 고민 중이던 그때였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3년간의 판공비(지휘활동비) 카드내역을 낱낱이 영수증을 첨부해 수사기관에 소명자료를 제출했다. 이 중 이발비 약값 병원비 등 개인용도로 쓴 142만여 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가 인정돼 50만 원의 벌금을 받았다.
“재향군인회장의 급여는 없고, 지휘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80만~200만 원 나왔죠. 저는 처음부터 철저히 영수증을 챙겨서 경리 담당자에게 넘겼는데 이런 문제가 터진 거죠.”
그의 개혁에 불만을 가진 일부 직원과 대의원들이 새 회장선거를 앞두고 일을 만든 것이다. 그로서는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보려다가 낭패를 봤고, 이후 모략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소송은 끝났지만 땅에 떨어진 명예는 회복할 수가 없죠.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죠. 분위기 쇄신을 위해 조직을 바르게 이끌려다가 일어난 일이라서 더 기가 막힐 뿐이죠.”
그는 요즘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의 자유와 명예훼손의 관계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화두처럼 머리 속을 빙빙 맴돌 뿐이다. 관련 법률 규정과 판례도 많이 찾아봤다. 법률가가 아닌 그로서는 딱 잘라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이런 분명한 보도준칙만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공인에 대한 비판보도는 신중해야 합니다. 제보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듣고 보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설사 오보를 했더라도 정정보도에 인색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공인의 명예를 짓밟아 놓았다가 오보인 것으로 판명날 땐 빨리 구명하는 것도 언론의 기본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수원=김동섭 기자 kds61072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