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핵심 추진과제로 꼽은 ‘재벌개혁’ 착수(着手)로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제재가 이뤄졌다. 이번를 제재 시발점으로 그간 현장조사를 마무리한 하림, 효성 등에 대한 제재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5일 공정위는 총수2세가 지분 70%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편법 승계를 도운 하이트진로와 소속사 등에 총 과징금 107억원을 부과했다.
또 하이트진로를 비롯해 사건의 중심인 총수2세 박태영 하이트진로 경영전략본부장과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 김창규 하이트진로 상무를 검찰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하이트진로는 총수2세인 박태영 본부장이 지분의 73%를 인수한 생맥주기기 제조사 서영이앤티를 계열편입한 이후 과장 2명을 파견하고 급여 일부를 대신 지급했다.
맥주용 공캔 제조사인 삼광글라스러부터 직접구매하던 공캔을 서영이엔티를 거치게끔 하는 등 ‘통행세’로 부당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 서영이앤티의 자회사인 서해인사이트 주식 전체를 하이트진로 비계열사에 매각할 수 있도록 우회지원했다.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총수2세인 박태영 본부장의 지배력확대를 꾀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서영이앤티는 하이트진로 소속사편입 이후 박문덕 회장의 지분증여와 기업구조개편 등을 거쳐 하이트홀딩스의 지분 27.66%를 보유한 그룹지배구조상 최상위 회사가 됐다. 또한 이러한 체질변화를 통해 박문덕 회장이 단독으로 지배하던 구조에서 서영이앤티를 통해 분할지배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하이트진로는 “공정위가 지적한 내용은 이미 해소된 사항이며, 지난 거래에 대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행정소송 등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고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제재는 김 위원장이 취임 이후 강조했던 재벌개혁과 관련해 이뤄진 첫 행보다. 그간 김 위원장은 “각 그룹의 문제점은 그룹에서 더 잘 알고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외부간섭으로 인한 개혁이 아닌 자정에 따른 변화를 요구해왔다.
또한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올해에는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과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라면서 “작년부터 시작된 일감몰아주기 조사를 계획에 따라 착실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번 제재를 시작으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제재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공정위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대기업집단 45개사에 소속된 225곳 회사로부터 총수일가와 계열사간의 내부거래 내역을 제출받아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림그룹의 경우 지난해 자산총액 10조원을 달성하며 대기업집단에 포함돼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2012년 비상장기업인 ‘올품’의 지분을 장남인 김준영 씨에게 넘겼다. 증여 직전해인 2011년 706억이었던 올품의 매출은 증여 이후 2016년 4039억원으로 폭증했다. 소규모 회사를 증여해 증여세를 줄이고 이후 일감몰아주기로 몸집을 키워 변칙적인 증여를 꾀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7월 전북 익산 하림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계열사간 거래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업계에서는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에 대한 현장조사가 이뤄진만큼 7월 조사가 진행된 하림이 다음 순서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 사익편취 혐의를 포착해 조사에 나선 효성, 미래에셋대우 등에 대한 순차적 제재도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한 기업을 제재했다는 정도가 아닌 (일감몰아주기 제재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면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조사가 이뤄진 만큼 조사가 마무리된 순서대로 제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