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범람하는 요즘입니다. 미디어소비자들은 포털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읽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소식을 일일이 따라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가 뒤섞여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기는 것조차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닙니다.
쿠키뉴스가 새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탐사보도물은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붕괴, 혼돈의 시대에 독자에게 더 양질의 뉴스를 전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뉴스의 파급과 유통이 하루, 반나절, 한 시간을 채 가지 못하는 환경에서 뉴스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은 뉴스를 되새김질하는 새 연재 ‘아이파일(I-File : Investigative reporting File)’을 선보입니다. ‘아이파일’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지나쳤던 일주일동안의 탐사보도를 풍부한 데이터와 자료, 증언을 더해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증언이나 정보를 이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매 연재 말미에는 취재기자의 후일담과 주관적인 시각도 집어넣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응원과 질책, 제보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국내 보건의료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의료기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여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도 있습니다. 바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병원 이야기입니다. 이제부터 전할 이야기는 이곳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에 대한 겁니다.
◇ 아이파일① : 5문항의 비밀
2010년 10월 14일 서울대의대 정신과 소속의 교수들이 서울대병원 6321호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이날 정신과 박사 입학생을 위한 ‘전공필답고사’를 이듬해인 2011년 11월 4일 오전 10시에 치르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출제는 안모 교수가, 채점 위원은 김모 교수로 정해졌습니다. 출제 범위와 관련해 회의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출제 분야의 균형은 기존처럼 맞추기로 함.’
‘기존처럼’이란 어떻게 출제된다는 걸까요? 2011학년도 전기 전공필답고사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시험은 7문항(▶1번 정신분열병 ▶2번 자문 ▶3번 소아정신과 ▶4번 정신과 비약물 치료 ▶5번 기분장애 ▶6번 노인정신의학 ▶7번 불안장애) 중 5문항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전기에는 정신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고루 출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2011년 후기 박사 과정에선 12문항이 출제됐습니다. 갑작스럽게 출제 문항이 늘어난 것도 이례적이지만 출제 범위에 대해 여러 뒷말이 오갔습니다. 12개 문항들을 분석해보면 1~7번까지는 전기 시험과 마찬가지로 각 분야에서 골고루 출제됐습니다. 문제는 늘어난 5개 문항들이었습니다. 각 문항에 따른 출제 영역은 이렇습니다. ▶8번 정신종양학과 ▶9번 디스트레스 ▶10번 양적·질적 연구 ▶11번 의사소통훈련 ▶12번 의사소통훈련 등.
8~9번은 정신과 함모 교수의 전공 분야였고, 9~12번은 2011년 5월 12일 정신과 학술 집담회에서 거론된 내용이었습니다. 출제는 안모 교수가 냈습니다. 이 부분이 왜 문제가 있는지는 아래에서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실제 2011년 전기와 후기 서울대 정신과 박사 전공필답고사 문항입니다. 독자들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교육부와 현재 경희대 박사 특혜 입학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참고하길 추천합니다.
■ 2011년 전기
1. 최근 조기 치료가 강조되면서 정신분열병의 고위험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PRIME clinic에서 사용하는 high risk group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2. SLE(systematic Lupus Erythematosus) 환자에서 여러 가지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의 발생기전(pathogenesis)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3. Hyden은 1980년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은 심리적 정신 역동과 행동 양상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이들 4가지 유형을 열거하고 설명하시오.
4.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시행 시에 주의해야 할 대상이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5. E. Kraepelin의 조울증 개념을 현대의 양극성 장애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6. 노화의 심리학적 측면의 변화과정에서 겪는 심리학적 과제 5개를 기술하고 설명하시오.
7. PTSD와 연관되어 있는 신경해부학적 구조물을 열거하고 이들 부위와 증상과의 관련해서 기술하시오.
■ 2011년 후기
1. 정신과 영역에서도 조기 치료가 강조되면서 early psychosis에 대한 치료에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2005년 international early psychosis association writing group에서 제시한 international clinical practice guideline에 대해서 아는 대로 쓰시오. (5개 이상)
2. 경련성 질환(Epilepsy)에서 보이는 성격적 변화에 대해서 기술하시오.
3. 1980년대 이후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정신분열병, 불안장애, 성격장애들에 대한 인지행동치료(CBT)의 유용성이 보고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요소(특징)에 대해서 기술하시오.
4. RBD에 대한 ICS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sleep disorders)의 진단 기준을 정의하시오.
5. Foulds와 Bedford의 정신질환의 hierarchy model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6. 강박장애의 classical concept of fronto-subcortical circuit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7. 알츠하이머 치매의 biomarker로써 neuroimaging의 장점을 쓰시오.
(문제가 된 8~12번 문항)
8. 정신종양학의 개념과 발전배경에 대해 설명하시오.
9. 디스트레스의 개념을 정의하고 디스트레스가 암환자 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시오.
10.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시오.
11. 의사소통훈련의 성과(outcome)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시오.
12. 의사소통훈련이 효과를 나타내는 요소에 대해 설명하시오.
◇ 아이파일② : ‘엑스트라 TO’
2011년 4월 21일 서울대병원 6321호 회의실. 정신과 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이날 회의록 중 다음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근무하던 인력이 본교(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할 수 있는지 문의하였음. 의과대학에서 검토를 하였고, 정신과 이외의 추가 TO를 내주기로 결정하였음. 정신과의 기존 TO나 대학원 추가 TO 발생 시의 정신과 배분에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받았음.”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정신과에서 박사 입학생을 위한 ‘여분의 자리’를 서울대의대에서 ‘허락’해줬고, 정신과는 이를 수용했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각 단과대학과 각 과의 대학원 TO가 일정 수로 유지됨을 고려할 때, 의대가 이러한 ‘엑스트라 TO’를 내준 것은 꽤 이례적입니다. 물론 이 자체를 ‘특혜’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TO배정은 예민한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단과대학 차원의 재량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 아이파일③ : 지도교수는 연수를 떠나버리고
당시 교수회의록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함모 교수의 장기연수와 관련해 학생상담을 연수기간 동안 담당할 인력을 의과대학에서 병원에 요청하였고…(중략). 1년 한시이며 학생상담…(중략)… 담당하게 되겠음.”
함모 교수는 서울대의대 정신과 박사 후기로 입학한 A 학생의 지도교수가 됩니다. 교수회의록은 이런 의미입니다. 박사 과정생은 입학했는데, 지도교수는 1년 장기연수를 떠나기 때문에 새로 들어올 학생을 지도할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겁니다.
취재진은 함모 교수가 연수로 자리를 비운 당시 1년 동안 A 학생을 지근거리에서 본 인사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가 취재진에게 해준 말은 놀라웠습니다.
“그 학생은 연구 및 논문 실력이 현저히 부족했습니다. 연구 데이터도 제대로 만들질 못했습니다.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학생도 힘들었을 겁니다. 사실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 없이 의대 박사 과정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A 학생의 실력은 정신과 전공필답고사를 치를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전이나 이후에도 이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A 학생의 박사 입학시험 성적은 1등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 아이파일④ : 우연 또 우연
의과대학 대학원이라고 해서 의대 출신만 입학하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A 학생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서울대의대는 A 학생이 박사 입학 의사를 밝히자, 정신과에 여분의 대학원 TO를 허락했습니다. 정황적으로 본다면, 전공필답고사 및 면접 등 일련의 입학 전형 이전에 이미 ‘누군가’를 위해 자리가 마련됐다는 겁니다.
당시 A학생을 포함해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에서 수련을 거친 전공의 4명도 지원했습니다. A씨는 그들을 제치고 시험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노력여하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A 학생이 정신과학 배경 지식도이나 이력이 없었다는 점이 걸립니다. 비록 해당 학생의 정신과 관련 분야 실력이 높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긴 했지만, 만약 해당 응시자가 입학시험 준비를 꼼꼼히 했다면 이 결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응시자의 ‘노력의 결과’로 보기엔 유독 우연이 여러 번 겹칩니다. 처음에 2011년 후기 박사 입학시험에서 출제된 8~12번 문항, 기억하시나요? 지도교수(함모 교수)의 전공분야에서 2문항(8, 9번)이 출제된 것이나, 1시간 동안 진행된 정신과 학술 집담회에서 3문항(10~12번)이 나온 것을 ‘우연’이라고 칩시다. 그리고 A 학생이 하필이면 그날 ‘우연히’ 이 집담회에 참석한 것과 학생이 시험에서 이 5문항들을 선택해 푼 것도 ‘우연’이라고 본다면 이상하리만치 우연히 반복됩니다. 이렇게 A 학생은 수년 동안 정신과에서 공부한 전공의들을 제치고 1등으로 입학했습니다.
◇ 아이파일⑤ : 평등한 기회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은 당시 출제자였던 안모 교수가 서울대 대학원 조사위원회에 소명한 내용을 입수했습니다. 정리하면, 비의대 졸업자 응시자가 있어서 배려해 해당 응시자가 풀 수 있는 내용을 냈다는 겁니다. 궁금해집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 100미터 달리기 대회에서 훈련이 안 된 선수가 출전했고, 그에게만 출발선을 달리 적용한다면 그 경기는 과연 공정하게 운영된 걸까요?
이러한 이야기의 끝이 대개 그렇듯 이 사안도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위원회는 “출제 교수의 재량”으로 결론지었고, 이 사안에 깊숙이 관련된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리고 A 학생은 끝내 박사 학위를 따지 못했습니다. 당시 조사위원장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평등한 기회(Equal opportunity)잖아요.”
“우리 소관이 아니”라던 교육부는 이 ‘평등한 기회’로 박사의 꿈을 접어야 했던 나머지 지원자들의 한숨과 한탄이 들리지 않나 봅니다.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