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이 북미산 원유 수입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국내에 통상압력을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원유 수입 증가는 한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총 원유 수입은 11억1817만배럴이다. 이 가운데 중동산의 비중은 81.7%(9억1345만배럴)였다. 전년 대비 4.2%포인트 감소하며 최근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미국·멕시코 등 미주산 도입량은 4445만3000배럴(4.0%)로 지난해 대비 1.2% 늘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최근 두바이산 원유 가격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미주‧아시아 등 타 지역 원유 수입을 앞다퉈 늘리고 있다.
국내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이달 초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200만배럴을 수입해 울산 공장에 들여왔다. 올해 국내에 들어온 첫 북미산 원유로 기록됐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자회사 SK에너지를 통해 올해 초까지 미국과 캐나다산 원유 총 1000만배럴을 들여오기로 했다.
GS칼텍스는 미국 텍사스주 이글포드의 원유를 구매했는데 그 물량이 200만~300만배럴 정도가 될 전망이다. 또한 캐나다 콜드 레이크의 원유도 약 30만배럴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2월말까지 미국과 멕시코산 원유를 각각 275만배럴, 200만배럴을 포함해 총 505만배럴의 북미산 원유를 들여올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미국산 원유 200만배럴을 들여온 데 이어 캐나다산 원유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대주주 사우디아람코로부터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고 있는 에쓰오일은 미국산 원유 도입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정유사들이 북미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WTI의 ‘경제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WTI는 경질유(API비중 34도 이상)인데다 황 함량도 적어 두바이유보다 고급 원유로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지만 최근 중동산 두바이유보다 낮은 상태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을 통해 산유량을 줄이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셰일 오일에 의한 원유 생산이 늘면서 WTI와 두바이유의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감도 두바이유 가격 강세의 한 요인이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으로 국제 원유 가격은 WTI가 배럴당 66.14 달러, 두바이유가 67.40달러를 기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내년도 원유생산량은 현재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10.9백만b/d)와 사우디(9.9백만b/d)의 생산규모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어 세계 원유 시장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산 원유 도입은 국내 석유산업, 정유사의 이해 득실만을 따질 수만은 없는 문제”라며 “트럼프 정부의 대 한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통상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미국산 원유 도입을 지속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WTI 수입 확대가 스폿(일시)물량에 불과해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관측도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중동원유를 86%를 수입했지만 중동원유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가격이 비싸져 당장은 북미 대륙에서 싸게 나오는 스폿 물량이 원유 도입 경제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WTI 수입량이 증가한 것”이지만 “국내 플린트들이 중동 원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미국산 원유가 운임료를 상쇄할 만큼 가격 경쟁력이 생겨야 국내 정유사들이 장기간 계약을 맺고 원유 수입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혜 기자 hey33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