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최초의 여성 총장은 현직에서 최초로 해임된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재임기간 동안 이어졌던 독선적 학사·행정 운영으로 구성원들의 원성을 사고,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 손실까지 빚었지만 끝내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최순자 전 총장. 인하대 구성원들은 최 전 총장이 남긴 전철을 또다시 밟지 않기 위해 학교가 새 총장을 세우고, 재도약하는 과정에서 공감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재정손실 책임 물어 해임… “독선·막말로 신임 잃었다”
지난달 25일, 인하대 재단 정석인하학원은 한진해운 부실채권에 투자했다가 학교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책임을 물어 최순자 전 총장을 해임했다고 학교 측에 통보했다. 앞서 지난달 16일 징계위원회를 통해 최 전 총장을 비롯한 전 사무처장·재무팀장 등 3명을 해임하기로 의결한 지 열흘만이다.
인하대는 대학발전기금을 손실 위험이 큰 회사채에 투자하면서 기금운용위원회를 거치지 않았고, 투자 후 위기관리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최 전 총장 취임 후 80억원, 박춘배 전 총장 재직 시 50억원 등 130억원으로 매입한 한진해운 회사채는 지난해 2월 법원 파산선고와 함께 휴짓조각이 됐다.
총장대행을 맡고 있는 이현우 인하대 교학부총장은 지난달 31일 최 전 총장 해임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며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러나 겸허하고 결연한 자세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의 적자 규모가 학교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구성원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최 전 총장 체제에서 인하대의 적자는 매년 불어났다. 2015학년도 70억원, 2016학년도 90억원, 2017학년도 12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누적됐다. 여기에 부실채권 매입 문제가 제기되면서 국책 사업비마저 삭감되거나 중단된 상태다. 향후 교육부의 각종 신규 재정지원사업 선정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가 크다.
인하대 구성원들이 최 전 총장을 신임하지 않았던 이유는 부실한 재정 운영 때문만은 아니다. 재정 손실이 퇴진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하긴 했지만, 기저에는 최 총장의 독선에 따른 구성원들의 개탄이 깔려있었다.
한 교수는 “단순히 130억원이 문제가 아니었다”며 “2016년 프라임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최 전 총장의 일방적 의사결정과 막말 등은 큰 반감을 불렀다”고 전했다. 교수회는 2016년 6월 임시총회를 가진 뒤 불신임에 준하는 강력한 경고를 최 전 총장과 재단에 전달했고, 이듬해 4월 열린 정기총회에서 총장 사퇴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91.7%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직원노조는 99%의 찬성으로 총장 사퇴를 의결했다.
◇ “선출과정에 구성원 공감 있어야… 첫 단계는 후보추천위 개편”
최 전 총장 해임이 확정된 지 17일이 경과했다. 그러나 당장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꾸려야 할 재단은 여전히 관련 일정을 내놓지 않고 있다. 1일 인하대 관계자는 “새 총장 추천위 구성 등에 대해 전달받은 사항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며 “재단에서 밝힌 바가 없기 때문에 총장 공모 등의 계획도 잡힌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성원들 간엔 당초 오는 3월 입학식 전까지 새 총장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입학식과 상관없이 미뤄질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온다. 일각엔 재단이 해임 결정에 불복한 최 전 총장의 교육청 소청심사 청구 가능성을 감안해 후임 총장 선출 절차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인하대 구성원들이 우려하는 것은 재단이 갑자기 일정을 강행하는 상황이다. 선출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새 총장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원영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최 전 총장 선임 당시 총학은 선출 구조 및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실질적으로 관철된 부분은 없었다”면서 “재단이나 학교가 학생의 참여 권리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고 전했다.
현재 인하대 총장후보추천위 구성은 재단 이사 5명, 교수 4명, 총동창회 1명, 지역 인사 1명으로 채워져 있다. 외견상으론 재단과 학교 구성원이 같은 비율로 보이지만, 지역 인사의 경우 한진그룹 계열 대한한공의 추천을 받고 있어 사실상 재단이 총장을 임명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교육 주체인 학생의 뜻을 수렴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최 전 총장이 구성원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내려앉은 가운데 새 총장 선출은 민주적 후보추천위 개편이 전제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구성원 중심 도약의 첫 단계는 후보추천위 개편이 될 것”이라며 “분명한 문제의식 있는 만큼 학생들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는 방향으로 힘을 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우상 교수회 의장은 “그간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총장들의 처사가 잇따랐는데, 구성원이 공감하는 선출 과정 및 학사 운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지나 동력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면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전례를 답습하게 되면 더 큰 문제와 반발을 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