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vs 책]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vs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책 vs 책]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vs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기사승인 2018-03-19 05:00:00


현대인에게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빨라졌고, 그에 맞춰 사람도 빨라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가 시간을 나누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잡아끌고 내쳐도 제 정신을 차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남은 시간이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시간은 점점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펼쳐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시간의 노예가 됐다. 하지만 시간의 정체를 깊게 생각하진 않는다. 추상적인 개념만 있을 뿐 손에 잡히지도 않고, 무엇인지 설명하기도 어렵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다문화, 문화예술, 대중문화, 문화재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익숙한 단어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전에 등재된 정의를 읽어봐도 그 의미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진 못한다.

그 어려운 것에 일부러 도전하는 괴짜 저자들이 있다.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쓴 논픽션 작가 사이먼 가필드와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쓴 문화심리학자 한민이 그 주인공들이다.

국적도, 직업도, 주제도, 글쓰기 방식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하지만 어려운 개념을 아주 쉽고 재밌는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생각지 못한 접근 방식과 기상천외한 소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두 책 모두 조금 두꺼운 편이지만 읽기 전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속 내용은 날아갈 듯 가벼운 이야기로 가득하니까.


△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분명 ‘시간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개념, 이론 설명은 없다. 대신 저자는 시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낸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차가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면서 기차 사고를 면하기 위해 표준 시간을 채택하게 된 이야기나 저장 장치의 용량 한계로 대부분의 음악 앨범이 70분 내외에 담기게 된 사연,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10진법 시계와 새 달력을 만들어 시간에 저항하려고 했던 프랑스인들의 이야기 등 시간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느 정도 이상의 분량을 읽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을 다룬 책인지 감 잡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독특하고 과감한 접근은 저자의 이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 자유로운 글쓰기로 명성을 쌓은 저자는 베스트셀러 ‘지도 위의 인문학’, 화학과 색채의 역사를 담은 ‘모브’, 폰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등을 집필했다. 이미 하나의 분야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열 권 넘게 썼다. 영국에서 라디오 작가로 활동했고 인디펜던트와 옵저버 등에 글을 기고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겐 낯설고 신선한 책, 기존 독자들에겐 반갑고 익숙한 책이다.


△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가 타고난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면,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는 대학교의 인기 강의를 책으로 묶어낸 느낌이다. 문화심리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중심으로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풀어낸다. 문화심리학의 관점으로 1부에서는 전 세계의 문화, 2부에서는 한국의 문화를 들여다본다. 가짜 칼로 싸우는 관우, 도둑들로 가득한 한국 영웅, 아프리카의 하얀 흑인, 서양인들이 피라미드에서 외계인을 찾는 이유 등 수업에서 들어도 졸지 않을만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는 실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다.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10여 년간 심리학, 문화심리학을 가르쳤고, 현재 우송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6년부터는 카카오 브런치에서 ‘한선생 문화심리학’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서문에서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자신 있게 쓴 책”이라고 소개한 저자의 자신감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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