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10년간 이어진 수시확대 기조에서 U턴
차관이 일부 대학 접촉해 ‘정시 확대’ 요청
“시간 부족해 의견 수렴 등 공식 절차 생략”
교육 현장 “당국이 나서 ‘대입 흔들기’” 불만 토로
“정부가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 혼란을 유도하고 있는 꼴이다. 교육 분야 정책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있다.”
교육부가 기존 대입정책을 예고 없이 뒤엎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책 혼선은 지난해에도 빚어졌지만 특히 올해 들어서는 논란이 큰 정책을 미루고, 반발이 심한 사안은 기조를 바꾸는 등 방향 잃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까지 수시 비중 확대 방침을 시사했던 교육부가 느닷없이 ‘정시 확대’ 카드를 꺼내들어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박춘란 차관은 지난달 말 서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중앙대, 경희대 등 5개 주요 대학과 접촉해 2020학년도 입시에서 정시 비중을 늘릴 것을 요청했다.
매년 4월 초까지 대입전형 시행계획안을 수립해 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당국의 요청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내 서울 9개 대학 입학처장은 긴급 간담회를 소집했고, 연세대는 지난 1일 2020학년도 입시계획을 발표하며 “정시 모집 인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난 1997년 수시 모집을 도입한 이후 10년 간 수시 확대·정시 축소 기조를 보였다. 2006학년도 당시 전체 모집인원의 48.3%였던 수시 비중은 2007학년도에 51.5%로 정시모집 인원을 앞질렀고, 올해 치러지는 2019학년도 입시에서는 76.2%를 차지한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3년 예고제를 시행할 정도로 대입정책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그만큼 정책에 따른 교육 현장의 파장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충분한 소통 과정이 없다면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일부 대학에 정시 확대라는 민감한 화두를 던져 논란을 부른 교육부는 해명도 불분명해 빈축을 사고 있다. 2일 이진석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모집은 확대되고 정시는 축소되는 문제와 관련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정시 확대 요구가 많았다”면서 “일부 대학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식 절차를 갖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2020학년도 대입계획을 이달 중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장기적으로 국가교육회의에서 여러 가지를 논의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교육 현장에서는 당국이 나서 ‘대입 흔들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정연(가명·46)씨는 “최근에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라고 대학들에 권고한 것으로 아는데, 이는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수능 축소, 곧 정시 제한으로 읽힌다”며 “정시와 수시 비율을 어디까지 잡을지 안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혼란만 키우는 이중적 정책 전개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교육계 한 인사는 “학생부 기재요소를 정비하자는 신뢰도 제고방안은 발표를 미뤄 정책숙려제를 통해 지방선거 이후에나 결론을 내기로 하는 등 지방선거를 감안한 행보가 보인다”면서 “느닷없는 정시 확대 움직임도 선거에 휘둘려 민심을 달래기 위한 꼼수라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