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확대 지침에 교육현장 혼란
“고2, 무리한 시험대 올라”
‘불분명한 해명’ 문제 제기
교육부가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권고에 이어 느닷없는 정시 비중 확대를 대학에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교육계에서는 추진 배경이나 향후 방향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결국 가중된 혼란은 고교 2학년 학생들은 물론, 학교 현장에서 감수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6일 고교 교실 등 학교 현장은 갑작스러운 교육부의 ‘정시 확대’ 지침에 따른 여파에 휘감겨 있었다. 특히 내년 9월로 예정된 대학 수시모집 원서 접수까지 16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고교 2학년 학생들은 그간 세웠던 입시 전략을 놓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2학년 김지은(17) 양은 “지난해 대학들이 선발 인원의 상당수를 수시 전형으로 선발한 만큼 학교나 학원의 조언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전형을 찾아 공부를 해왔는데, 정시가 확대된다고 하면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양은 “후배들도 영향을 받겠지만 우리 학년이 무리한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전형 등을 추천하거나 안내하기가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한 고교 진로진학상담교사는 “1학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특정 전형을 택하는데, 교육부 지침으로 대학들은 움직이고 있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대입을 몇 년에 걸쳐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시간적으로나 학습 양적으로나 가혹한 면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앞서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지난달 29∼30일 사이 이화여대와 중앙대, 경희대 총장에게 잇따라 전화해 2020학년도 정시모집 인원의 확대 여부를 타진했다. 서울대, 고려대도 이미 비슷한 주문을 전달받은 상태였다. 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할 전형 세부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던 대학들은 ‘수시 확대’ 방침을 고수하던 당국의 뜻밖에 요청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서울 9개 대학 입학처장의 긴급 간담회 등이 소집됐다. 실제로 연세대, 서강대가 정시모집 확대 편성 계획을 발표했고 서울대, 성균관대 등도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지난 1997년 수시모집을 도입한 이후 최근까지 10여년에 걸쳐 ‘정시 축소’ 기조를 시사해왔다. 이에 기존 대입정책이 예고 없이 뒤집히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김정연(가명·46)씨는 “불과 얼마 전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라고 대학들에 권고한 것으로 아는데, 이는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수능 축소, 곧 정시 제한으로 읽힌다”며 “정시와 수시 비율을 어디까지 잡을지 안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혼란만 키우는 이중적 정책 전개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대통령이 고교교육정상화 등에 대한 내용을 공약이나 국정과제를 통해 방점으로 찍어놓았는데, 당국이 계속해서 흔들어대고 있는 셈”이라며 “안 그래도 민감한 교육현장에서는 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급하게 진화에 나섰지만 해명이 불분명하다는 빈축을 더했다. 관련해 이진석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수시모집은 확대되고 정시는 축소되는 문제와 관련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정시 확대 요구가 많았다”면서 “일부 대학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대학에 전화 통화로 주요 대입사항을 요청하는 등 의견 수렴 같은 공식 절차를 갖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2020학년도 대입계획을 서둘러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장기적으로 국가교육회의에서 여러 가지를 논의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성급한 행보에 그간 강조됐던 ‘3년 예고제’도 무용지물이 됐다. 시시각각 변하는 입시의 안정성을 꾀하고자 마련한 원칙마저 스스로 깼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대학에 고교교육기여대학 지원사업을 내밀어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권고하고, 유선 상으로 정시 확대를 요청하는 등의 일은 누가 봐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런 식으로 실제 정책 결정이 이뤄진다면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당국은 의혹을 해소시켜줘야 할 책무가 있다”면서 “쌓여만 가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이 같은 추진 배경 등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서둘러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