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LG 이끈 구본무 회장… 반도체는 '恨'

글로벌 LG 이끈 구본무 회장… 반도체는 '恨'

기사승인 2018-05-20 13:41:46

구본무 회장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에서 구자경 명예회장(93세)과 하정임 여사(’08년 작고) 사이에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구 회장은 당시 소학교 교사였던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서 엄격한 규율과 예의범절, 가족간의 화합과 형제간의 우애 등을 배웠다.

이후 1950년 부친이 조부이자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에 합류함에 따라 구 회장은 어려서부터 경영자로서의 태도나 역할에 대해 두 어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구 회장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장 구경을 갔을 때 땀 흘리며 비누와 ‘동동구리무’를 만들던 직원들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현재 LG의 사업틀을 구축했고, 부친은 그 사업 기반을 굳게 다지셨다”고 회고했다.

구 회장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재학 중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 애쉬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오너 일가라 하더라도 철저한 경영수업을 통해 실무 능력을 검증 받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LG家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때문에 구 회장은 취임 당시 오너家 경영자로서 탄탄히 기초를 다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구 회장은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룹 차원의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부회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중요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장을 보좌하고, 각 사의 경영현황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회장 시절 그룹 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과 해외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도 맡아 그룹의 전략적 과제인 ‘기술개발력 제고’와 ‘국제화 추진’을 적극 주도했다.

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고객 가치 창출에 필요한 핵심기술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여기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는 역할이었다.

◇1995년 50세 LG 3대 회장에 취임… ‘글로벌 LG’ 이끌다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구 회장은 회장이 1995년 LG 회장으로 취임하며 던진 일성이다. 취임 순간부터 LG를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사업구조 재편으로 ‘초우량 LG’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한대로 제 2의 경영혁신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평소 지론에 따라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나갈 사업으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그 과정에서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산업 경쟁력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가전, 기초소재 등 전자와 화학 분야의 주력사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다는 목표로 선제적인 투자와 역량을 집중해 흔들림 없이 탄탄히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으로 이끌었다. 가전 사업은 명실상부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석유화학의 기초소재 사업도 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사업으로 안착했다.

◇집념의 경영자…이차전지로 미래 먹거리 확보

특히 구 회장은1990년대 초반 당시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차 전지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20년 넘게 끈기 있게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며 현재 LG의 핵심 성장사업이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으로 키워냈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방문한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서 충전해서 반복 사용이 가능한 이차 전지를 처음 접하고, 미래의 새로운 성장사업이 될 가능성을 봤다.

구 회장은 이차 전지 샘플을 직접 가져와 당시 계열사였던 럭키금속에 이를 연구하도록 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토록 하여 연구를 계속 진행하도록 했다.

2005년에 이차 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라고 다시 한번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그 결과 LG화학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한 데 이어 중대형배터리 분야를 적극 개척해 현재 '전기차 배터리 제조 경쟁력 평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제조 경쟁력 평가' 등 중대형 이차 전지 사업 경쟁력 면에서 글로벌 Top으로 평가 받으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LG화학은 국내 오창공장을 비롯해 미국 홀랜드 공장, 유럽 폴란드 브로츠와프공장, 중국 난징공장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4각 생산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한층 강화하면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년간 전기차배터리 등 전지 부문에서만 매출 5조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화학은 2017년 기준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와 유럽의 아우디, 다임러, 르노 볼보, 중국의 상하이 자동차 등 30여개의 완성차 업체를 배터리 공급처로 확보했다.

이처럼 전기차 배터리 수주를 꾸준히 늘려감에 따라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2017년 말 기준 30개 회사로부터 42조원에 달한다.

◇과감한 결단…디스플레이 사업 육성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정부가 주도한 빅딜 논의로 반도체사업의 유지가 불확실해진 위기 상황에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하고 있었던 LCD사업을 본격 육성해야겠다는 의지로 이들을 따로 분리하여 별도의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그룹의 운명과 미래를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고뇌 끝에 디스플레이 사업 육성이라는 신속하고 단호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반도체 빅딜 직후 LG는 14개월 동안 지속됐던 외자유치 협상에 속도를 올리며 전력투구해 1999년 5월 네덜란드 필립스社로부터 당시 국내 민간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달러의 자본유치에 성공하고 3개월 후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디스플레이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LCD분야의 기초 기술력을 보유한 필립스와 응용기술이 강한 LG의 공동 합작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 합작으로 LG는 대규모 신규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전세계 LCD시장의 급격한 수요 증가를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공급능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LG는 2008년 필립스와 결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고, 이후 더욱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LG디스플레이는 TV, 모니터, 노트북 등에 사용되는 9인치 이상 대형 LCD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무려 31분기 연속 시장점유율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구 회장은 대형 LCD 점유율 1위에 올랐던 2009년, 머지 않은 미래에 후발 주자의 거센 추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던 대형 OLED의 본격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했다.

OLED는 LCD와 달리 백라이트 없이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두께가 얇고 압도적으로 화질이 뛰어나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린다.

마침내 LG디스플레이는 2013년 세계 최초로 55인치 OLED 패널 양산에 성공하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현재 LG디스플레이가 유일하게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형 OLED 패널을 생산하고 있으며, LG전자는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과 디자인을 내세워 OLED TV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OLED TV가 프리미엄 TV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LG전자 TV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사상 최대 실적과 영업이익률을 갱신하고 있다.

또 소니, 파나소닉, 필립스, 뱅앤올룹슨, 스카이워스 등 일본, 유럽, 중국 등 글로벌 TV업체도 OLED TV 진영에 속속 합류하면서 LG디스플레이 고객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등에 따르면 OLED 패널 출하량은 2015년 30만대에서 2018년 280만대로 10배 가량 성장하고, OLED TV도 2020년에는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520만대가 판매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시초 '금성일렉트론'… 반도체, 평생의 한

구 회장은 1989년 5월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LG반도체는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며 성장했고, 반도체 사업을 그룹의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여긴 구 회장은 LG반도체에 대한 강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기를 맞아 회사는 고속성장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인 1998년 정부가 '재벌 빅딜'에 나서면서 자리가 위태해졌다.

구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끝까지 애착을 보이며 LG반도체를 지키려 했으나 결국 1999년 7월 회사를 현대그룹에 넘기게 됐다.

이후 LG반도체는 D램 시장 불황과 유동성 위기 등에 시달리다 결국 2001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현대에서 빠져나온 현대반도체는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꾸고 11년을 주인 없는 상태로 지내다 2012년 2월 SK그룹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됐다.

이훈 기자 ho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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