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통제 어려운 주취자 폭력과 폭언…방법은 없나

[진료실에서] 통제 어려운 주취자 폭력과 폭언…방법은 없나

기사승인 2018-06-17 05:00:00
글·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

[쿠키 건강칼럼]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일명 ‘주폭’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피해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예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구조하던 취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뇌출혈로 숨진 구급대원 사건을 비롯해 광주 집단폭행, 대구 폭행 등 각종 주취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주취폭력 근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법적 처벌과 함께 예방을 위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

술과 폭력성이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코올은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공격해 기능을 마비시킨다. 술김에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코올 섭취가 폭력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갖지 않는 것이 문제다.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을 술 탓으로 돌리는 관대한 음주문화가 주폭을 양산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음주를 지속할수록 뇌 기능이 점점 손상돼 나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경우 알코올이 해독된 후에도 뇌 기능의 변화와 중독성 사고의 진행으로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폭언이나 폭력을 행하거나 심지어 자해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해 이를 제지하려다 상해를 입는 등 치료진들의 고충도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알코올 중독 치료는 단순히 술과 격리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꾸준한 교육과 상담도 병행돼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중독 문제를 인정하고 사고와 관점, 감정상태, 행동 기술 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지행동 치료, 에니어그램 등 다양한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등을 실시해 환자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술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술을 마시며 살아왔던 삶을 변화시키고 술 없이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입원 초기 치료를 거부하고 원망과 분노로 난동을 부리던 환자들도 치료 후 오히려 입원시켜주어 고맙다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례도 많다.

주취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 취해 저지른 실수’가 아닌 알코올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 음주에 관대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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