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용기

[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용기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속 양극성 장애

기사승인 2018-06-23 00:11:00

이 칼럼은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이 영화와 드라마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는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_편집자 주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감독 데이비드 러셀)의 주인공 팻 솔리타노(브래들리 쿠퍼 분)는 법원 명령으로 8개월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던 팻은 집에서 아내가 동료 교사와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분노한 그는 상대 남성에게 심한 폭력을 휘두르고 맙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양극성 장애가 발병한 상태였음을 인정받아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였죠.

팻의 어머니는 의료진의 권고를 무시하고 퇴원을 강행했지만, 그는 아직 사회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정신과 질환을 인정하지 않고는 약의 복용을 거부했죠. 부인이 떠난 것도 받아들이지 못해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무시하곤 계속 만남을 시도합니다. 팻으로 분한 브래들리 쿠퍼는 양극성 장애 환자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양극성 장애는 흔히 조울증이라고도 불리는 정신과 질환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병이죠. 일반적으로 조증에선 기분이 들뜨며 자신감이 올라가고, 도중에 말을 끊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 빨라질 뿐더러 말수도 많아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면 시간이 줄고 과소비를 하거나 하고픈 일을 참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도 묘사됩니다. 주인공은 소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밤중에 부모님의 침실을 찾아가서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다 창밖으로 책을 집어던져 버립니다. 외도를 목격했을 때 들었던 음악을 병원에서 우연히 듣곤 책꽂이를 엎어버리기도 하죠. 부인에 대한 건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팻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자면 조마조마해집니다.

팻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를 만납니다. 그녀도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여러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잠자리를 갖다 해고까지 당하게 되죠. 팻은 티파니에게 끌리고, 티파니는 그런 팻을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팻은 자신이 유부남임을 강조하며 도망치듯 뛰쳐나오고, 전 부인을 향한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결혼식 영상을 찾습니다. 그러다 또다시 부인의 외도 장면이 떠올라 혼란에 빠진 팻은 실수로 어머니를 때리고 아버지와도 몸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결국 이튿날 팻은 끊었던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고 결심을 한 거죠.

현실에서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들은 팻과 유사한 경험을 겪습니다. 정신과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결함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을 인정하고 해결 방법을 빨리 찾을수록 일상으로의 돌아가기도 쉽지만, 상당수 환자들은 절망하고 두려움에 빠져 본인의 상황을 회피합니다.

티파니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이 물음은 정신과 치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했던 나와 실제 현실에서의 모습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 간극을 부정할수록 인생의 경로를 바로잡을 기회도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티파니는 그럴 용기가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죠.

토닥거리며 댄스 대회 출전 연습을 하던 그들은 서로의 문제를 거침없이 꼬집습니다. 독설에 가까운 솔직함은 이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죠. 그러는 사이 이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됩니다. 팻과 티파니의 사랑은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요?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 eastblue0710@gmail.com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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