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에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는데, 벌금부터 내야 할 처지입니다.”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노조)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성주동 한국지엠 창원공장을 상대로 농성에 들어간지 225일째인 25일 오전.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조합원들은 통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농성 컨테이너를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힌 성산구청의 통지서를 보여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해 원청업체인 창원공장이 비정규직 공정 라인에 정규직을 투입하는 ‘인소싱’을 추진하자 해고자 복직 등을 촉구하며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창원공장 앞 컨테이너 농성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비정규직노조는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의혹 등을 제기하며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8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창원공장의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774명을 원청업체인 창원공장이 직접 고용할 것을 시정 명령했다.
공교롭게도 농성장 강제대집행이 예고된 7월3일은 고용노동부가 창원공장에 통보한 직고용 시정 명령 기한이다.
이 기한을 넘기고도 고용노동부의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1명당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예상했던 결과이기는 했지만 비정규직노조가 이 같은 판정에 기뻐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직고용 시정 명령을 코앞에 두고도 원청업체인 창원공장이 후속 조처에 대한 대응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노조가 컨테이너 농성장 철거 통보에도 이곳을 끝까지 사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한국지엠은 2013년과 2016년 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비정규직을 곧바로 직고용하지 않았다.
이 판결 이후 비정규직 5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다’는 승소 판결을 몇 년 만에 받고서야 겨우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불법파견 판정에도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 전환에 큰 기대를 걸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고용노동부의 조처가 강제성이 없는 데다 이런 기류가 감지되면서 또 다시 지루한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성명석(37)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은 “774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했을 때 드는 연봉 등의 비용보다 직고용을 하지 않았을 때 부과되는 과태료 70여 억원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성 대의원은 “만약 한국지엠이 불법파견 판정을 인정하지 않고 행정 소송을 제기한다면 정부 지원을 약속받은 국민 혈세가 여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김모(46)씨는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정말 정규직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회사가 행정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리니 너무 한탄스럽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에서 15년간 일하는 동안 ‘쪼개기 근로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소속 업체가 자주 바뀌었다고 했다.
성 대의원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과 허성무 창원시장 당선인 면담을 요청했지만, 김 당선인과는 아직 만나지 못했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허 당선인의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농성장을 철거할 계획은 없다”면서 “곧 있으면 앞서 해고됐던 조합원들의 실업급여도 끝난다. 하루 빨리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 전환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창원=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