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대금 미지급, 끊이지 않는 악순환 고리…‘갑질’ 이뤄질 수밖에 없어

공사대금 미지급, 끊이지 않는 악순환 고리…‘갑질’ 이뤄질 수밖에 없어

기사승인 2018-07-07 05:00:00

건설 산업은 통상 여러 주체들이 공동 작업을 해나가기 때문에 하청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공사대금 미지급, 임금체불 등의 분쟁이 계속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원청업체는 하청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하는가 하면, 일부 하청업체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한다. 정부가 이를 방지하고자 관련 법조항을 마련해놨음에도 불구하고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 불신은 깊어만 가는 상황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 월급은 꼭 챙겼습니다. 사장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4일 용인시 처인구 한 전원주택 공사현장에서 원청건설사와 공사대금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하청업체 대표는 유서를 통해 원청업체 사장에게 이같이 말했다. 경찰은 원청 건설사로부터 1억원대의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갈등을 빚어왔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원청 건설사와 하청업체간 공사대금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 6월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 하청업체 사장은 흉기로 자신의 배를 자해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경찰과 소방당국에 의하면 SK건설이 하도급업체 현장 사고처리를 떠넘기는 등 불법을 저질러 공사비 약 89억원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같은해 8월 공정위에 따르면 GS건설은 영산강 하구둑 구조개선사업 토목공사 중 수문 설치공사를 맡긴 수급사업자에게 물량 증가에 따른 추가공사대금과 이에 따른 지연이자 71억원을 지급하지 않아 과징금 약 16억원을 물게 됐다.

건설 산업은 통상 기획·설계·시공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여러 주체들이 공동 작업을 해나간다. 하청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공사대금 미지급, 임금체불 등의 분쟁이 계속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고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을 위탁하는 경우, 목적물 등의 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에 가능한 짧은 기한으로 정한 지급기일까지 하도급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때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지급기일을 정한 것으로 인정되거나 해당업종의 특수성과 경제여건에 비춰 그 지급기일이 정당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정원에 접수된 하도급거래 분야 분쟁은 1267건이며, 이 중 하도급대금 미지급 관련분쟁이 908건으로 전체의 71.7%를 차지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실장은 “무엇보다 건설업계 관행적으로 발주처인 원청업체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갑질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며 “공사대금 지급이 늦어진다거나 해도 하청업체는 다음 공사 때 원청업체와의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미지급된 공사대금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정부에서 하청업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공사대금 미지급 등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간의 갈등은 계속돼 왔다”며 “일각에선 하도급 등을 맡기지 말고 원청업체가 직접 시공을 맡는 직접시공제로 가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업체가 있고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문제는 구조 자체에 있다”며 “하청업체 측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직접시공제로 가야 공사대금 미지급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건설업계 전망이 밝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직접시공제로 진행된다면 당장에 밥줄이 끊기는 셈이라 반대하고 있는 상황”고 전했다.

발주처 및 원청업체에게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존재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라는,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의 프레임 속에서 이를 이용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하청업체도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하도급업법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을 60일 이내 지급하지 않으면 공정위에서 제재가 들어간다”며 “일부 하청업체는 60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산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하고, 서류를 통한 사실 확인 등의 시간을 끌면서 60일을 넘겨 하도급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제소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소 후 제소 취하를 빌미로 단가 협상에 들어가 당초 산출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요구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지 등을 고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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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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