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만난 삶과 사람 ③(끝)

케냐에서 만난 삶과 사람 ③(끝)

소 배설물로 만든 집에서의 잊지못할 하룻밤

기사승인 2018-07-26 01:00:00

사역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홈스테이라고 말하고 싶다. 케냐에 있으면서 홈스테이를 두 번 했다. 그 중 마사이 족과 보낸 하룻밤을 잊을 수 없다.

교회 근처 초등학교 사역을 마친 후 몇 명씩 짝을 이뤄 홈스테이를 떠났다. 기자가 배정받은 곳은 꽤 멀어 차로 이동했다. 동행한 이는 ‘트룰리’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가는 내내 어색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부르는 노래만 따라 불렀다. ‘라 세 라이나~’ 그런 우리가 재미있는지 트룰리는 계속 웃었다.

마을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느낌이다. 집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주인인 구유니(16)에게 우갈리(옥수수를 말려 빻은 가루)와 설탕을 선물했다. 집은 평범했다. 상상했던 원뿔 모양 집은 아니었다. 소 배설물과 흙을 섞어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네모반듯한 집이었다. 농장을 구경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허리를 구부려야 할 만큼 좁았다. ‘터널’을 지나자 매캐한 연기냄새가 났다.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 곳은 방과 거실, 주방을 겸하고 있었다. 연기로 꽉 찬 공간에 대가족이 모여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10명 안팎인 듯 했다. 그 중에는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전통의상을 입은 남성도 있었다. 흰 염소도 두 마리 있었다.

구석에 앉아 눈물, 콧물을 짜내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전통음료인 ‘짜이(우유에 찻잎을 넣고 끓인 음료)’를 한 컵 주셨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손님을 대접할 땐 음식을 가득 담는가 보다. 할머니께서 방금 끓인 차를 잔이 넘칠 만큼 따라주셨다. 빈 컵도 같이 주셨다.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차가 뜨거우니 조금씩 식혀서 먹으라는 뜻이었다. 한 컵을 비우면 또 한 컵, 그렇게 세 잔을 연거푸 마셨다. 

티타임 후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주인 부부가 이용하는 공간인가보다. 벽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그 곳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젊은 가장인 구유니는 매일 소를 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도 파일럿이라는 근사한 꿈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밤 10시가 되자 ‘야식’이 나왔다. 마사이 인들은 저녁을 늦게 먹고 포만감을 느낀 채 잠에 든다고 한다. 감자가 들어간 볶음밥을 한 접시 가득 담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졸음이 올 때쯤 주인이 우리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그 곳엔 낡은 침대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부부 침실이었던 것 같다. 구유니는 담요를 직접 깔아주고 문을 잠그는 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줬다. 우리는 챙겨온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날이 밝자 묵상을 한 후 준비해준 음식을 먹었다. ‘짜빠티’라는 현지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침개다. ‘짜바티’는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귀한 음식이라고 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짜빠티’를 두 장씩 먹었다.

이날 특별한 선물도 받았다. 마을 어르신께서 갑자기 들어 오시더니 마사이 이름을 지어주셨다. 기자가 받은 이름은 ‘올로쉬파(Oloshipa)’다. ‘매일 행복하라’는 뜻이다. 어르신은 케냐에 다시 오면 꼭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우리는 그들과 기념사진을 남기고 헤어졌다.

트룰리는 돌아오는 숙소까지 또 함께 동행해줬다. 돌아오면서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라 세 라이나’ 지금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한다. 마사이 족이 베풀어준 정성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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