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가스공사의 자회사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관련 경력이 전무한 정치권 인사의 이른바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로 사장 공석 체제를 이어와 새로운 사장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해진 만큼, 막중한 책임론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앞서 가스기술공사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신임 사장으로 단독 추천한 이은권 전 국회의원을 이날 열릴 예정인 주주총회에서 선임 의결할 예정이다. 주총에서 최종 승인되면 산업부 장관의 제정을 거쳐 대통령(직무대행)의 임명을 받게 된다. 큰 변수가 없는 한 관련 절차를 거쳐 오는 4월 초 취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의원은 단국대학교에서 토목공학 학사와 행정학 석사를 취득하고, 대전 중구청장과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기간 중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대전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다만 가스기술공사와 관련된 경력은 없다. 가스기술공사는 국내 천연가스 설비의 유지·보수 및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번 사장 공모에는 총 16명이 지원, 1차 서류심사에서 10명, 2차 면접심사에서 5명이 최종 후보로 압축됐다. 지원자 중에는 김중식 전 서울에너지공사 사장, 진수남 현 가스기술공사 사장직무대행 등 기술 전문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산업부는 정치권 인사를 최종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특히 진수남 직무대행은 지난해 5월 사장 공석 후 직무대행을 맡아 비상경영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총 매출 4123억원, 영업이익 214억원, 당기순이익 15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1%, 32.2%, 40.9%가량 실적을 끌어올려 한 차례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간 공기업 사장 인선 과정에서 낙하산, 자질 논란 등은 분야를 막론하고 꾸준히 제기돼 온 바 있다. 그러나 가스기술공사에게 이번 사장 인선 과정과 절차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직전 사장이자 가스분야 전문가였던 조용돈 전 사장은 재임 기간 해외출장 7회 중 6회에 걸쳐 동거녀를 동반하고, 개인 아파트에 공용 물품을 제공받는 등 과정에서 부당이득 총 1812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임기 만료를 열흘 남긴 지난해 5월 해임됐다. 이후 총선으로 인해 지난해 8월 시작된 사장 인선 절차는 탄핵 정국을 지나 해를 넘기게 됐다.

사장 공백 기간 동안 진수남 직무대행 체제에서 가스기술공사는 △2024년 단기성과관리 고도화 △사업 리스크 관리 강화 △안전·청렴·윤리 강화 및 공직기강 확립 등 ‘비상경영 5대 중점 관리과제’를 토대로 실적 반등 및 안정화 국면을 이어왔다. 이제 반등세를 이어갈 업계 전문가가 필요한 타이밍인 셈이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간 사장이 공석인 상황이 지속되면 민생 과제 수행을 위한 공공업무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특히 최근 천연가스 등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하는 만큼, 관련 분야 전문가 주도 하에 기술 개발 및 장기 플랜을 수립·추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측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이 전 의원의 취임이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돼 가는 만큼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정치권 인사의 장점을 살려 공사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중립적 의견을 보이고 있다.
김태용 가스기술공사 노조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낙하산 논란에 대해 우려점이 있으면서도 공기업 특성상 정부 정책과의 원활한 협력 등 장점이 내부 사정 개선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며 휴일근무 문제 해결, 대전 본사 사옥 증·개축 및 지사 사옥 이전에 대한 청사진 등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연중무휴로 가스공사 배관망 관리를 하는 업무환경 속에서 정부의 총인건비 관리지침에 따라 휴일근무에 대한 임금을 보상휴가로 지급하는 것이 과도한 업무공백을 유발하고, 결국 이를 메우기 위해 지속적인 인원이 투입돼 회사의 인력운영에 부작용이 되풀이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오는 6월 말 인천, 강원 등 3개 지사가 새 사옥으로 이전하는 가운데 다른 지사들도 순차적으로 세부적인 이전 계획을 마련·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장 공백으로 그간 이러한 문제 해소에 속도를 내지 못한 만큼 신임 사장 선임 직후 눈앞의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해석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정치적 불확실성 가운데에서도 신임 사장 임명이 가스기술공사의 장기적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노조가 제시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명확하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으면 무기한 출근저지 투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는 과거 경영진이 회사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으며 이번 신임 사장 임명이 가스기술공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