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은 상대적이다. 갑이 을이 될 수도 있고, 을이 갑이 될 수 있다. 관계에 따라 을과 병이 되기도, 병과 정이 되기도 한다. 관계란 상대적이다.
프랜차이즈업계는 지난해부터 부침을 겪어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비롯해 가맹본사와 가맹점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안팎으로 우환의 연속이었다. 이후 상생협약 등을 통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처가 봉합된 상태다.
그러나 ‘을’인 가맹점주들은 누군가에게 있어 ‘갑’이다. 바로 라이더, 배달직원들이다.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라이더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근무여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규제·법규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라이더유니온(준비모임)은 라이더 노동환경 실태조사 기자회견을 열고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폭염시 별도 수당을 받는 라이더는 전체의 7.2%에 불과했으며 폭염 대비물품을 지급하지 못한 라이더는 76.4%나 됐다. 폭염에도 두꺼운 청바지를 입는 등 계절에 맞지 않는 유니폼을 착용하는 라이더도 절반이나 됐다.
특히 안전을 위해 착용해야하는 헬멧이나 보호용품을 개인지급 받고 있는 라이더는 열 명 중 두 명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자비로 용품을 구입해 착용하고 근무한다고 답했다.
이날 라이더유니온은 현실적으로 가장 급한 안전용품 개인지급과 날씨 수당 실행을 요구했다. 일부 안전용품을 지급하고 있는 매장의 경우도 대부분 공용인 경우가 많아 안전사고 위험과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돼있는 상황이다.
현재 프랜차이즈 업계에 있어 라이더들은 특이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기존 근무노동자이면서도 플랫폼 근무자라는 새로운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형태 역시도 제각각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배달대행업체가 업무협약을 맺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맹점이 개인적으로 대행업체와 계약하거나 혹은 개인 라이더를 고용하는 상황이다. 같은 라이더라 하더라도 근로여건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그나마 프랜차이즈본사가 대행업체와 업무협약을 통해 라이더를 지원하는 경우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안전과 용품지급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맹점주가 대행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는 경우, 그리고 개인적으로 직접 고용하는 경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라이더들이 안전과 날씨, 용품 등에 대한 요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겨울철 장갑과 각종 보호대, 헬멧 등을 사비로 구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여기서 기인한다. 안전용품 지급에 대한 규정도 강제되지 않는다. 라이더의 안전상황이 고용주에 온전히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제도적 절차만으로는 라이더 등 배달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폭우와 폭설 등 자연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배달을 강행하다가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을의 근로상 안전이 갑의 기분이나 그때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서는 안된다. 라이더들에 대한 법적인 안전장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