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에서 최근 화두가 되는 단어는 단연 ‘A.I.(artificial intelligent)’,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기억력이나 정보습득 능력을 가볍게 상회하는 기능을 바탕으로 암을 비롯해 각종 질환의 진단을 보조하고 다양한 정보를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미 현행법상의 규제나 의료진의 거부반응만 없다면 직접 문제를 판단하고 진단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개발자를 비롯해 허가권자들, 규제당국자 심지어 일반 환자들에 이르기까지 AI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다.
우려도 크다. ‘디지털 예외주의(digital exceptionalism)’, ‘인공지능 제외(A.I. passing)’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쓰인다. 첨단혁신기술, 인공지능이라는 말만 붙으면 무사통과되고, 인공지능을 의사의 진단보다 신뢰하는 현상 등을 지적하는 말이다.
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것일까. 보다 좋은 도구가 등장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다면 삶을 더욱 윤택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텐데 왜 걱정하고 고민해야하는 걸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지만 이는 ‘새로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원자폭탄 혹은 다이너마이트가 대표적이다. 도구이기에 당초 개발자들의 의도나 생각과 달리 쓰일 수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보건의료분야는 부작용이 환자의 생명 혹은 건강과 직결된다. 그 때문에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평가된다.
더구나 인공지능과 같이 인간의 직접적이고 실시간에 가까운 통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스스로 습득하고 판단해 행동할 수 있는 도구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의도를 가진다면 1명의 생명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오르면 아저씨일까.
물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개발자들이나 이를 사용하는 이들 또한 사회적 혹은 윤리적으로 고심하고 사회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에 앞서 왜 환자들이 AI에 열광하고 기대감을 드러내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자신의 생명 혹은 건강에 관한 정보를 의사가 아닌 인공지능이 대신 알려준다는데 왜 환자들은 의사보다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려는 모습을 보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인공지능의 기반을 컴퓨터로 인식하고 있어 빠르고 정확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은 그동안 환자들이 의사 혹은 정부로부터 정확한 사실, 풍부한 정보, 객관적인 비교나 상세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받거나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분 진료’, ‘건성 진료’라는 말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 간 깊이 있는 상담은 불가능해진지 오래다.
게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그 상위기관인 보건복지부 등은 보건의료계와의 관계악화 혹은 보건의료계로부터 쏟아질 반발을 우려하며 환자들이 원하는 정보의 제공수준을 낮추거나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본인 혹은 일가친척이나 지인들이 아파 병원을 찾을 때 자신들이 내놓는 자료나 정보를 이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까. 오죽하면 컴퓨터가 판단해주는 결과를 의사보다 믿고 따르려 할까.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내가 병에 걸려 해당 질환이나 치료받을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치료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원할 때, 그것이 인공지능이든 누구든 대신 선택해주거나 말해주기에 앞서 스스로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보건의료분야는 90% 이상의 민간의료기관에 의해 움직이지만 이들 중 99% 의료기관은 국가와 세금형태의 국민부담을 재원으로 하는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의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감시와 관리에서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해당 병원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평균적으로 어떤 수준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제시하고 찾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수준에 이른 곳인지 올바른 선택이 이뤄질 수 있는 정보는 주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공지능에 열광만하며 신뢰만하기보다 인공지능과 논쟁을 벌이고 따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