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나 국내 정부가 홀로 통일금융을 감당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국제 기구의 도움을 받아 다국적 자본을 통해 통일금융을 마련해야 한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18일 통일금융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으로 금융권에서 ‘통일금융’에 대한 기대가 올라가고 있다. 다만 동시에 통일금융에 대한 부담감을 표시하는 조심스러운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북한의 금융과 통일을 위한 과제'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 개혁개방에 들어갈 경우 초기 주요 국영산업 육성을 위한 막대한 정책자금 수요가 발생하고, 북한 사회에 퍼져 있는 사금융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 민간금융의 지원이 선행되야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15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철도·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금융 수요를 고려할 경우 남북경제 협력으로 열리는 북한 금융시장은 시장 포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금융권에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금융권은 이에 조직과 인력을 보강하는 동시에 북한 금융시장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남북관계의 단계별 진전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이 참여·지원할 수 있는 기회 영역을 검토하기 위한 TF를 지난 5월 말부터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도 남북금융경협랩을 설치하고 북한 금융시장에 대한 참여기회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금융은 김정태 회장이 스포츠 행사를 기회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국내 은행권 대표로 참석하는 등 은행권 CEO들도 적극적으로 북한 금융시장 진출 기회를 찾아보는 중이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기존 ‘통일사업부’를 ‘한반도신경제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북한 관련 연구 등을 맡길 ‘남북경협연구단’을 신설하기도 했다. 여기에 투입될 인력도 확충했다.
IBK기업은행도 IBK경제연구소 산하에 북한경제연구센터를 신설했으며 통일금융준비위원회를 IBK남북경협지원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수출입은행 역시 북한 금융시장에 대한 연구 확대를 위해 북한·동북아연구센터에 박사급 인력 2명을 확충하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기대와 함께 북한 금융시장 진출에 조심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관건은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와 변화무쌍한 남북관계의 변화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금융시장 진출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은행권의 공통된 반응이다. 또한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개성과 금감상에 지점을 운영하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라 현지 자산을 모두 남겨두고 인원만 철수한 선례가 있어 리스크를 분산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점을 하나 운영하는 것과 달리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리스크를 회피할 방안이 마련되야 한다”며 “국내 정부를 통해 지원하는 것보다 국제 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 그러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방북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남북경협 문제는 크고 위험하다. 한국 금융기관이 먼저 진출해 자리 잡느냐에 따라 성과를 낼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북한 금융시장 진출에 신중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