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헌법 전문)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헌법 제121조 1항)
9일 한글날이 572돌을 맞았다. 국가는 우리말을 올바르게 가꿔 나갈 의무가 있다. 특히 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사회 규범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에는 어려운 한자, 일본어식 표현이 남아있다. 한글로 순화하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우리나라 최고 법 헌법에서는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어식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각인’(各人)은 ‘저마다’로, ‘최고도’(最高度)는 ‘한껏’으로 대체 가능하다. ‘~에 있어서’는 일본 말투 ‘におい て’를 그대로 번역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간단히 ‘에서’로 바꾸면 된다. ‘부속 도서’(附屬 島嶼)는 ‘딸린 섬’으로, ‘경자유전’ (耕者有田)의 경우 ‘농토는 농민에게’로 바꾸면 이해하기 쉽다.
어려운 한자어로 쓰인 법 조문은 대다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포태(胞胎), 몽리자(蒙利者), 상린자(常鱗者), 폐색(閉塞), 기망(欺罔) 등이 그 예다. 포태는 임신한 사람, 몽리자는 이익을 얻는 사람, 상린자는 서로 이웃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폐색은 막힌 것을 의미한다. 기망은 속임수를 뜻한다.
광복 70주년이 무색하게 법률에는 일본어식 표현도 많다. 민법과 형법에 등장하는 ‘정상참작’(情狀參酌)은 일본에서도 어려워서 쓰지 않는 단어다. ‘~된다고 할 것이다’는 ‘のである’에서 유래된 번역투 표현이다. 접미사 ‘~적(的)’, ‘~에 대해서’, ‘~에 있어서’ ‘~에 대하여’ ‘~에 의하여’ 역시 고쳐야 할 일본 잔재다.
우리 헌법과 법률에 한자와 일본식 표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본법률이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하던 일본 법률을 상당부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제처는 지난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다. 법제처가 지난 2016년 지난 10년 동안 1106건의 법률을 국회에 제출해 이 중 877건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한자어 정비 주요 사례로는 경범죄처벌법상 ‘요부조자(要扶助者)’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해저광물자원 개발법에 있는 ‘계출(屆出)하다’는 ‘신고하다’로 바꾼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정비 사업은 더디다. 법제처는 지난 2013년 민법과 행정소송법, 지난 2014년 형법, 지난 2016년 형사소송법, 지난해에는 상법 정비안을 각각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해 형법과 형사소송법, 지난 2월에는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소관 부처가 아직 법령 심사 요청을 하지 않아 개정안은 현재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다.
또 지난달 3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은 “(법제처는) 새로 발의되는 정부 입법안으로 정비 범위를 한정했다”며 “이미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제처 관계자는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법무부 입법예고까지 마쳤으나 법령 심사 요청을 받지 못했다”며 황 의원 지적에는 “새로운 입법안 외에도, 기존의 법률과 하위법령에 있는 어려운 용어들에 대해서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전수조사해서 발굴하고 앞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정부와 국회가 법을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대로 ‘알기 쉬운 헌법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우리법을 우리글로 쓰는 것은 상식이다. 모든 국민이 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수십년 동안 연구를 통해 어떤 표현이 문제고,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까지 국회에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즉 판검사 출신의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이 개정할 필요성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이들은 자신이 공부했고 익숙해져 버린 법률문장이 좋은 줄 아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공동대표는 “일본 식민 교육 잔재를 없애기 위해 법률용어 순화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