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18개월 만에 산재 인정된 ‘물량팀장’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18개월 만에 산재 인정된 ‘물량팀장’

기사승인 2018-10-24 19:10:28



지난해 5월1일 노동절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6명이 숨진 크레인 사고와 관련, 사고 당시 하청업체 물량팀장이 사고 발생 18개월 만에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이번 결정은 특히 고용 구조상 비정규직 노동자가 만연한 조선업에서 개인사업자 논란으로 그동안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았던 물량팀장이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례여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5월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진모(55)씨는 사고 당시 직원 10명가량을 이끈 물량팀장이었다.

조선업종의 고용 구조는 일반 제조업 고용 단계인 원청업체→하청업체와 달리, 원청업체→하청업체→물량팀→돌관팀으로 이어지는 기형의 수직적인 구조다.

통상적으로 고용 단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근무 여건이나 임금 등이 열악해지면서 위험에 노출될 우려도 커진다.

조선업계에서는 비용 절감이나 사고 시 책임 회피의 목적으로 이 같은 고용 구조가 만연한 게 현실이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로 숨진 6명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진씨도 이 사고로 다쳤다. 크레인에 연결돼 있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진씨를 덮쳤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진씨는 수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고 후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같이 받았다.

진씨와 계약한 하청업체는 사고 직후 진씨를 찾아와서는 사고 직전 날짜로 계약이 만료된 도급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면서 진씨의 도장을 가져갔다.

결국 진씨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진씨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공단은 진씨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물량팀의 대표인 데다 사업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납부했고, 스스로 직원을 채용해 사업을 운영하는 점으로 미뤄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경남지부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에 따르면 진씨는 사고 전인 지난해 1월 삼성중공업의 하청업체 ‘성지산업’과 구두계약을 맺고 일했다.

진씨는 직원들의 출‧퇴근 현황 등을 하청업체에 보고했다.

하청업체는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계산해 진씨에게 건네줬고, 진씨가 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임금을 나눠줬다.

진씨는 또 업무지시도 하청업체로부터 받았다.

진씨가 물량팀장이지만 데리고 있던 직원들의 해고 여부는 하청업체가 결정했다.

실제 하청업체의 지시로 진씨팀의 직원이 해고되기도 했다.

진씨가 개별적인 물량팀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업무상 지시나 직원의 근태 관리 등은 모두 하청업체가 맡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들 단체는 진씨가 물량팀장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사정으로 미뤄 사실상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로 판단했다.

이들 단체는 “진씨는 노동자가 맞으며,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야 한다”면서 지난 5월 고용노동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 산재재심심사위원회 심의 결과 근로복지공단의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진씨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산재재심위는 “형식상 사업자 등록을 해 하도급계약서를 체결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등 도급 사업주로 보인다고 해도 사업장 사무실이나 취업규칙 등 사업경영 실체를 갖추지 않고,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이 따르는 사업을 영위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는 정상적인 도급관계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려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진씨가 2달이 지나서야 이 결과를 알게 되면서 물량팀장의 근로자성 인정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것 아니냐고 노동단체는 지적했다.

재심청구를 대리한 법무법인 ‘믿음’ 김태형 변호사는 24일 “이번 재심은 사용자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일하는 물량팀장에 대해 근로자성을 부인해 온 근로복지공단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과 관련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에 있어서 다단계 하청업체의 근로자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는 “물량팀장의 노동자성은 2015년 법원에서 인정된 적이 있지만, 재심 과정에서 인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게는 80%에 달하는 조선업계에서 이번 결과는 매우 의미 있다”고 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죽음의 현장에 있었던 진씨의 그동안 겪은 고통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 현장의 고통이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거제=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강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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