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을 언급하자 저작권법을 거론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개인의 창작물은 다양한 해석 중 하나랍니다. 표절 시비 당사자가 원작자에게 당신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표절 논란을 둘러싸고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과 그룹 워너원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워너원은 지난 25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공식 SNS를 통해 다음달 19일 발매하는 자신들의 첫 번째 정규앨범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새 앨범의 콘셉트는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사랑의 기원에 관한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의 존재였던 인간이 신의 분노로 둘로 나뉘게 되자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기원이란 내용이죠. 이 내용을 형상화한 심볼이미지와 ‘사랑의 기원’의 영문 표기인 ‘디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란 문구가 티저에 등장했습니다.
익숙한 콘셉트입니다. 이미 뮤지컬과 영화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헤드윅’을 통해 이미 이야기된 콘셉트였기 때문이죠. 워너원이 보여준 심볼은 ‘헤드윅’의 심볼과 비슷하고 ‘디 오리진 오브 러브’는 ‘헤드윅’ 주제곡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소식은 ‘헤드윅’을 만든 극작가 겸 감독, 주연 배우인 존 캐머런 미첼에게 빠르게 전해졌습니다. 존 캐머런 미첼은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직접 영상으로 워너원의 티저를 언급했습니다. “고대 신화가 밴드와 팬들이 함께 모이는 은유로 사용되는 것은 자유”라면서도 “워너원 측이 기여도에 대한 언급 없이 노골적으로 가져다 쓰고 신화 수준을 낮춰 슬프다”라고 적었죠. 또 워너원의 티저 영상을 보여준 후 “조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워너원의 소속사 측은 반박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저작권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같은 날 스윙엔터테인먼트 측은 “워너원 콘셉트 티저는 플라톤의 '향연' 중 사랑의 기원에 대한 개념을 모티브로 제작됐다”며 “사전 검토 과정에서 해당 건은 사랑의 기원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가치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 영역'이므로 저작권적 관점으로는 이슈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당 개념은 뮤지컬·영화 '헤드윅'에서 ‘디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라는 음악으로 차용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며 “사랑의 기원에 대한 개념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기에 '헤드윅'의 원작자이신 존 카메론 미첼님의 의견 또한 존중한다”고 덧붙였죠.
존 카메론 미첼도 곧바로 워너원 측의 입장에 답했습니다. 존 카메론 미첼은 “이번 티저와 관련해서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소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워너원 팬들이 플라톤 신화를 읽었으면 좋겠다. 이는 나와 '헤드윅' 작곡가에게 그랬듯 여러분들의 삶과 예술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워너원과 팬들에게 사랑을 보내지만 이 티저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힌 소속사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며 “신화의 해석에 표절은 없지만 이번 티저는 무례함이 있었다. 남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독단적이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신의 의도가 소속사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죠.
예의를 언급한 원작자에게 워너원 측은 법적 문제로 접근했습니다. 혹시 존 카메론 미첼이 저작권료를 요구할 거라 생각한 걸까요. 아니면 곧 발표될 워너원의 앨범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걸 걱정한 걸까요. 짧은 대화만으로도 양 측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더 이상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논란은 곧 잠잠해지겠죠.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왠지 모를 민망함과 소속사를 향한 워너원 팬들의 분노는 누가 책임지나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