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논은 짧게 깎은 소년의 머리처럼 휑했다. 농부는 쌀쌀한 바람에도 옷깃을 여미지 않았다. 일년간 햇살을 머금은 누런 벼들은 한 켠에서 차례로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일 서울에서 차로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전북 익산 황등면에 위치한 황등농협미곡처리장(RPC, Rice Processing Complex)이었다. 이곳은 CJ프레시웨이와 협약을 맺은 익산시 황등면에서 수확한 쌀들이 한데 모이는 장소다.
CJ프레시웨이가 익산시와의 계약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는 2016년부터다. 구매 물량 1600톤의 계약재배를 시작한 CJ프레시웨이는 2017년 3700톤으로 양을 늘렸다. 올해는 더욱 늘어 8000여톤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익산시에서 한 해 동안 출하되는 전체 량의 5%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재배면적 역시 같은 기간 240㏊에서 1200㏊로 5배 가까이 늘어났다.
황등리에서 쌀 농사를 짓고있는 서상원 신기1마을 영농회장은 계약재배 이후 가장 개선된 점을 ‘소비판로’로 꼽았다.
서 회장은 “과거 생산은 하지만 소비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계약재배 이후 CJ프레시웨이가 전량 수매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근심을 덜었다”면서 “계약재배가 아닌 인근 농가는 쌀이 안 팔려서 밭떼기 채로 헐값에 팔아벌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가에 수매 제한을 두는 RPC도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CJ프레시웨이와 계약재배를 맺은 농가가 재배하는 쌀은 ‘보람찬’ 품종이다. 보람찬 품종은 생육은 쉽지 않지만 병충해에 강한 데다가 미질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상원 회장은 “처음 CJ프레시웨이로부터 해당 품종을 재배해달라고 제안을 받고 본사로부터 설명도 들었지만 쉽지 않았다”면서 “보람찬 생육과 관련해 실용화재단 관계자가 와서 단계별로 설명을 해줬지만 실제 벼가 자라는 토질이나 토양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보람찬 품종에 대한 매뉴얼이 없다보니 실패를 많이 했다”면서 “4년간 자체적으로 농가와 횡등농협이 토질·토양연구를 하고 비료 양을 조절해가며 최적의 수치를 찾아 재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각 농가에서 수확된 벼는 RPC에 한데 모인 뒤 건조기로 향한다. 건조기에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양곡사일로에 임시 저장돼 송풍건조에 들어가게 된다. 건조는 40℃로 20시간 진행된다. 이 과정이 지나면 27~28%였던 벼의 수분은 15%까지 떨어지게 된다.
건조를 마친 쌀은 우선적으로 창고에 저장된다. 온도가 높을 경우 쌀이 발아할 가능성이 있어 저장창고는 10℃로 유지된다. 창고에 저장된 쌀은 보관되다가 발주가 들어온 즉시 도정을 시작한다.
도정은 건조를 마친 쌀을 다듬는 과정이다. 먼저 종합석발기를 통해 왕겨가 붙어있는 것을 깎아내는 ‘재현’ 과정을 거친다. 이 중 왕겨가 떨어진 쌀은 백미발석기로, 그렇지 않은 것은 현미석발기를 통해 재차 재현 과정에 들어간다. 총 3개 석발기를 통한 뒤에야 비로소 정미기와 연미기에 들어가게 된다.
정미기는 현미를 우리가 먹는 흰 쌀인 ‘백미’로 바꿔주는 과정이다. 정미기를 통한 쌀은 정미를 거치면서 거칠어진 쌀 외부를 깎는 ‘연미’ 과정에 투입된다. 이러한 작업이 마친 쌀은 비로소 색채선별기를 통과한다.
공장 안내를 맡은 심소안 황등농협미곡처리장장은 “색채선별기야말로 우리 RPC의 핵심선별과정”이라면서 “쌀알이 일일이 하나씩 지나가면 LED 조명장치를 통해 쌀 외부를 비춰 하얗지 않은 쌀을 모두 걸러낸다”고 말했다.
통상 색채판별기의 경우 처리용량을 채널 수로 이야기하는데 황등RPC의 색채선별기는 430개에 달한다. 쌀알이 하나씩 색채선별기에 투입되면 430개의 LED 조명장치는 쌀 외부를 비친다. 행여 겨가 떨어지지 않안 노란색을 띄거나 이물이 묻어 검정색을 띄는 등 설정한 색이 아닌 모든 이물은 걸러진다.
색채선별기를 지난 쌀들은 곧바로 옆에 위치한 이물색채선별기로 이동한다. 이물색채선별기는 쌀에 포함된 수분을 감지해내는 기기다. 수분이 없을 경우 쌀알이 아닌 이물로 판단돼 선별기로부터 걸러진다.
심 장장은 “쌀 한 포대에 이물질이 100개라고 하면 색채선별기는 70개 정도 걸러내고, 이물색채선별기는 99개를 걸러낸다”면서 “색채선별기와 이물색채선별기를 통과한 뒤 발견되는 이물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고 자신했다.
이어 그는 “매주 CJ프레시웨이 식품안전센터와 품질혁신팀에서 사람이 내려와 정해진 가이드 대로 기기들을 점검하며 ‘만에 하나’를 없애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선별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색채선별기와 이물색채선별기를 지난 뒤 쌀알들은 진동선별기로 이동한다. 옛적 어르신들이 키에 쌀을 담아 흔들어 이물질을 떠오르게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포장돼 출하된다. 이렇게 완성된 ‘보람찬’ 쌀은 전량 CJ제일제당의 대표적인 가정간편식 제품인 ‘햇반’을 제조하는데 사용된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자사 계약재배는 농가에는 판로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소득확보가 가능하게 하고 기업은 고품질 농산물에 대한 물량확보를 통해 상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Win-Win 구조’”라면서 “이는 CJ그룹의 주요 경영방침의 하나인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확대에도 부응할 수 있어 앞으로도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지속적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