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HIV감염인 차별금지? ‘인권’은 어디에

[기자수첩] HIV감염인 차별금지? ‘인권’은 어디에

기사승인 2018-11-08 03:00:00

환자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여부를 의료인만 알 수 있도록 차트에 표시하는 것은 차별일까. 병원에서 HIV감염인과 관련된 긴급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환자의 감염여부를 모르는 당직의사나 간호사가 제대로 된 조치를 할 수 있을까. 

의료계 등에 따르면, 최근 질병관리본부는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안)’에 대한 각계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지난 1월 HIV·에이즈 감염인의 의료차별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개되자 의료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현실과 맞지 않는 과도한 조항이 포함돼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해당 가이드라인은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것 ▲처방전이나 차트에 감염 여부를 표시하는 것 등을 차별의 예로 들고 있다. 또 이 같은 의료차별이 발생할 경우 의료법 제15조 제1항 및 89조에 근거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60조에 따른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계는 가이드라인에 담긴 예시가 차별로 규정된다면, HIV 감염경로를 묻는 문진, 질병 상태를 진단하기 위한 의료행위가 모두 ‘차별행위’에 포함될 것이라고 봤다. 또 의료종사자들만 알도록 감염여부를 차트 등에 표시하는 것이 금지된다면 HIV 원내감염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HIV 뿐만 아니라 성 매개로 감염될 수 있는 모든 바이러스 감염인을 진료하는 의사는 문진 과정에서 환자에게 감염경로와 관련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자칫 부끄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감염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정상적인 의료행위다. 감염경로를 파악해야만 감염에 취약한 사각지대를 돌보고, 예방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경로 파악을 ‘차별’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나아가 가이드라인이 제시한대로 HIV감염인의 감염여부를 의료인조차 알지 못하게 막는다면, 의료인과 다른 환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HIV는 후천적면역결핍증(AIDS)를 유발하는 원인 바이러스다. HIV감염 환자의 혈액, 정액, 질분비물, 모유 등이 타인의 점막에 노출됐을 때 감염된다. 물론 약물치료를 통해 바이러스가 잘 관리된 감염인의 경우 혈액 등이 노출되더라도 감염 위험이 적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오는 모든 HIV감염인이 감염위험이 낮은 상태는 아니다.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감염사실을 알고, 본인의 감염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 구성원의 감염예방을 위해 대비할 의무가 있다.

HIV 감염인에 대한 과도한 편견은 사라져야 하지만, ‘차별’이라는 명목으로 의료인이 대비조차 못하게 한다면 감염위험에 노출되는 의료인과 환자들은 늘어나겠고, 우리 사회 HIV 확산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 직접 보지 못한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HIV감염인에 대한 과도한 편견과 공포 또한 사람들이 HIV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차별이 생겨나고, 많은 HIV 감염인들은 차별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해법은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숨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게조차 감염사실을 숨기게 하고, 감염경로 파악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HIV감염인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일이고, 이는 곧 이들에게 차별로 돌아간다. HIV 감염인들이 더 잘 숨고, 숨기도록 돕는 법은 ‘인권’이 아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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