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계에 '단독법' 바람이 부는 가운데 대한물리치료사협회가 가장 먼저 공론화에 나섰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는 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물리치료사법 제정' 공청회를 열고 물리치료사법 제정 필요성을 피력했다.
현재 물리치료사는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때문에 물리치료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기사는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도 하에 환자에 치료를 시행, 보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물리치료사들은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물리치료행위에 대한 의사의 '지도'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의료기사법상 의사의 '지도'가 전제됨으로 인해 물리치료사의 활동영역과 발전가능성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김기송 대한물리치료사협회 교육부회장은 "물리치료 영역이 의료기관 외에도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관, 장애인 관련 시설 등 지역사회로 확장되고 있음에도, 현행법은 의사, 치과의사의 지도를 전제하고 있어 보건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며 "또 한방물리치료 영역이 제도화되고 있음에도 한의와 물리치료 간의 협력체계를 단절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물리치료사 단독법을 만들어 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을 통해 물리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열어달라는 것이다.
김기원 고려대학교 보건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도(地導)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끌다'는 의미다. 그러나 임상현장에서 의사의 지도를 받는 경우는 없다. 의사의 처방만 있을 뿐이다. 처방(處方)이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증상에 따라 약을 짓는 방법'을 말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의사의 지도 하에 물리치료 서비스가 수행되어야만 국민 건강과 안전이 보장된다는 건 비논리적인 주장"이라며 "건강의 개념은 수직적 관계에서 환자중심의 수평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의료영역에서도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리치료사들의 '단독법'추진에 다른 보건의료직역과 단체도 지지를 보냈다. 앞서 지난 7일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는 각각 단독법 제정 추진에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공청회에도 참석해 협력을 약속했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은 "과거 급성병이 만연할 때 만들어진 의사 중심의 제도를 허물고 만성병을 예방하는 새시대에 걸맞는 법이 필요하다"며 "물리치료사 단독법 제정에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재수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우리 의료법에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에 국한한다. 그밖의 의료기관 종사하는 보건의료인력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행위를 대리수행하는 구조로 독립적 행위가 불가능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변화되는 의료환경에 따라 의료기사를 기존의 기술직에서 전문직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더했다.
이용재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서비스는 의료법,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개별 의료인, 의료기사의 전문성 향상과 독자적 역할 증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일부 전문가들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보건의료 체계를 만드는 문제는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우려를 밝혔다. 김해영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현실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도는 의사의 판단과 지식, 통제가능성과 법적책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사망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최종 책임을 의사가 진다는 뜻"이라며 "'지도'를 '처방'으로 변경하는 것은 의료기사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이고, 결국 독자적 개원, 단독개원으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물리치료사 단독법 제정 요구에 보건당국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권근용 보건복지부 의료정책자원과 사무관은 "아직 물리치료사법이 공식 발의되지않은 상태라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 다만 지금의 법률이 시대변화에 충분히 따라가지 않는 점이 있는만큼 제정 취지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협회가 주장하는 실익을 얻기위한 방법이 꼭 별도의 법이 있어야만 실효성이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고, 관련 의료기사들이 준비가 되어있는지, 차별성이 있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또 만약 단독법이 통과된다면 지금의 교육과정이 적절한지, 면허관리, 법적 책임범위는 어떻게 할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