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소파에 앉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모습이 스크린 위로 떠올랐다. 한국 취재진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스크린과 통역을 사이에 두고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감독은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성실히 듣고 섬세하게 답했다. 영화 ‘로마’를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와 이날 행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21일 오후 2시 서울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에서 넷플릭스 ‘로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 라이브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컨퍼런스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난 14일 국내 개봉한 ‘로마’에 대한 이야기와 이틀 먼저 공개된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로마’를 “꼭 해야만 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태어나 자란 동네인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이 배경이 됐고 제목이 됐다. 그가 사용하는 모국어로 창작부터 연출까지 모든 과정이 진행됐다. 감독은 “유럽에서 수년간 지냈지만 감성적 뿌리는 여기(멕시코)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유럽에선 언어의 전환이 통역을 통해서 이뤄져야 했다면 멕시코선 직관적으로 자유롭고 감성적인 디테일과 뉘앙스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직접 각본을 썼을 뿐 아니라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었다. 이에 대해 “처음 각본을 쓸 때부터 누구와 상의를 하지 않아서 처음엔 긴장하기도 했다”며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제가 있는 그대로 촬영할 수 있어서 좋은 효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1950년대의 흑백 영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느낌의 흑백 영상을 연출하고 싶었다”며 “매우 현대적인 시각에서 과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해석도 풀어놨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작품의 아이디어는 현재의 유령이 과거로 돌아가서 관찰하고 참여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 외에도 음향 사운드를 통해서 체험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공간 개념을 존중하고 싶었다”며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통해서 시각적인 것 이상의 체험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전작인 영화 ‘그래비티’가 객관적인 관점 체험이 많았다면 ‘로마’에선 주관적인 표현이 주로 이뤄졌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넷플릭스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감독은 “정말 재밌는 상황”이라며 “극장에서 체험할 만한 작품을 비디오 플랫폼에서 공개하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나도 관객이 극장에서 로마를 봤으면 좋겠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선 넷플릭스 같은 신규 미디어 플랫폼이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멕시코 언어로, 흑백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 넷플릭스라 가능했다고 했다. 거꾸로 관객들 역시 새로운 플랫폼 덕분에 ‘로마’ 같은 영화에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감독은 “극장에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졌다고 생각한다”라며 “오히려 새로운 플랫폼이 영화 선택의 다변화, 다양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건 극장이 아닌 지금의 플랫폼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로마’는 1970년대 초반 혼란의 시대를 지나며 여러 일을 겪어야 했던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에 사는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다. 지난 14일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극장에서 개봉해 20일까지 1만234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 중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