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최태원 SK그룹 회장 개인대출에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한 징계 결정을 또다시 연기해 논란을 빚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10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한국투자증권 종합검사 결과 조치안을 심의했으나 논의가 길어짐에 따라 추후 재심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종합검사에서 초대형 투자은행(IB)인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사업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으로 파악하고 기관경고, 임원 해임 권고, 일부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를 사전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20일 제재심에서도 이 사안을 논의했지만, 한국투자증권 측의 소명이 길어지자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금감원이 문제 삼은 혐의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최태원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8월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1673억원을 특수목적회사(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에 대출해줬다. 이후 키스아이비제16차는 이 자금으로 SK실트론 지분 19.4%를 인수했다.
당시 이 SPC는 최태원 회장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있었다. TRS는 주로 실제 투자자가 주식매입 자금이 부족할 때 실시하는 계약으로 주가 변동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을 부담해주며 자기 자금 없이도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최 회장이 TRS 계약으로 SK실트론 지분 19.4%를 확보한 것이다.
또 다른 SPC인 '더블에스파트너쉽'도 삼성증권에서 차입한 863억원으로 SK실트론 지분 10%를 인수했는데 이 역시 최 회장은 TRS계약으로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삼성증권 자금은 발행어음 조달자금은 아니다.
이는 SK가 2017년 초 LG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한 뒤 같은 해 8월에 추가로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발행어음 조달자금으로 사실상 최 회장에게 SK실크론 매입자금을 대출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한국투자증권과 최 회장 사이에 SPC가 끼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개인대출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자본시장법상 단기금융업(발행어음)의 경우 개인 신용공여 및 기업금융 업무와 관련 없는 파생상품 투자가 금지돼 있다.
이에반해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SPC라는 '법인'에 투자한 것으로 개인대출이 아니다”라며 “기업금융 업무의 하나로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