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알함브라’ 송재정 작가 “재밌을 것 같은 혼종 플롯, 제 맘대로 만들었어요”

[쿠키인터뷰] ‘알함브라’ 송재정 작가 “재밌을 것 같은 혼종 플롯, 제 맘대로 만들었어요”

기사승인 2019-01-16 06:00:00


“처음엔 알함브라 궁전에 가면 대단한 게 나올 줄 알았던 3류 기타리스트가 일사병에 걸려 가이드와 사랑에 빠지는 블랙코미디였어요. 엘론 머스크 자서전을 읽으며 유진우가 나왔고, 게임 ‘포켓몬 GO’를 만나서 증강현실이 나온 거죠.”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탄생 배경을 요약한 송재정 작가의 말은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드라마를 꾸준히 본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얘기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 판타지를 다룬 장르물이다. 출장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투자회사 CEO 유진우(현빈)가 호텔에서 정세주(찬열)의 전화를 받고 그라나다로 떠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유진우는 전직 기타리스트였던 정희주(박신혜)가 운영하는 낡은 호스텔에 머물며 정세주가 만든 증강현실 게임에 접속한다.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를 집필한 건 tvN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MBC ‘W’ 등을 탄생시킨 송재정 작가다. 타임슬립과, 웹툰 등 신선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가 이번엔 증강현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송재정 작가는 4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대로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드라마의 탄생 배경을 들려줬다.

송 작가가 3년 전 ‘W’를 마치고 구상하기 시작한 건 타임슬립 장르물이었다.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에 이은 3부작을 완성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생각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유진우였다. 호텔에 묵던 유진우가 낯선 인물의 방문에 문을 열면서 타임슬립 된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작업은 좀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송 작가는 “내가 많이 했던 장르여서인지 욕구가 잘 안 생기더라”라고 했다.


그때 송 작가가 만난 게임이 ‘포켓몬 GO’다.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한 ‘포켓몬 GO’ 열풍이 불던 당시 송 작가는 직접 여의도 광장에 나가 몬스터를 잡아보고 감탄했다. 송 작가는 “'포켓몬 GO'처럼 몬스터와 아이템만 증강현실로 적용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게임 소재를 생각하려해도 ‘아바타’처럼 작품에서 구현이 가능할까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포켓몬 GO’를 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엘론 머스크 자서전을 보고 떠올린 유진우라는 캐릭터, ‘포켓몬 GO’를 통해 접한 게임 증강현실, 거기에 포르투갈에서 만난 일행에게 듣게 된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 등이 뒤섞여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독특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송 작가는 자신의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들의 플롯과는 다르다고 했다. 처음부터 드라마를 쓴 것이 아니라 예능과 시트콤에서 출발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전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 예능과 시트콤 작가로 일을 시작했어요. 젊은 시절에 시트콤을 10년 정도 하다보니까 정통 드라마랑은 거리가 먼 시간들을 보냈죠. 평소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사람도 아니에요. 영화나 책을 더 좋아하죠. 드라마 작법을 공부하거나 연습해본 적 없고요. 그래서 짧은 단막극의 특성과 영화나 책 보면서 느낀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요. 제 맘대로 재미있을 것 같은 플롯을 만든 거죠. 전 드라마를 쓸 때 16개의 엔딩을 정해놓고 매회 단막극이나 영화를 쓴다는 기분으로 엔딩을 위해 만들어나가요. 저도 습관이 돼서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정통적인 기승전결의 16부 미니시리즈보다는 10회 이내의 시즌제 드라마가 저한테 더 잘 맞겠다는 걸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그럼에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한 송 작가의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는 시청자들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능력, 독특한 소재지만 익숙한 이야기 전개가 그의 드라마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에 송 작가는 판타지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지만 인간 감정의 리얼리즘은 중요하다”고 했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자유롭게 쓰되, 판타지를 마주한 인간의 놀라는 반응이나 좌절감 같은 장면은 최대한 현실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얘기다. 퀘스트를 실패한 유진우가 회사에서 쫓겨나고 소송에 걸리는 등 힘든 상황을 긴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송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들은 보편적인 히어로 영화의 구성을 따른 것이라고 했다. “영웅이 아닌 주인공이 만화적인 과정을 거쳐 비현실적인 세계와 현실적인 세계의 공격을 받으며 성장해 진짜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덕분에 히어로인 남자주인공이 모든 걸 해결하면서 많은 고생을 한다. 상대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낮은 것에 송 작가는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사전에 배우 박신혜에게 양해를 구했고 1인 2역이 그에게 새로운 경험이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송 작가는 “아직 드라마도 끝나지 않았고 차기작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현재 갖고 있는 생각을 힌트로 남겼다.

“제가 뭔가를 한 번 시작하면 그 재미를 느끼기 위해 질릴 때까지 해요. ‘인현왕후의 남자’ 때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인’까지 타임슬립 장르를 이어서 했죠. 처음엔 증강현실과 게임 장르를 하기가 겁이 났어요. 사람들마다 제가 쓴 글을 머릿속에서 다 다르게 그리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영상으로 보고 우리나라 제작진이 이렇게 훌륭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자신감도 얻었고요. 현재로선 이 장르를 한 번만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시청자들을 적응시키기 위해서 기초 수준의 게임 룰만 설명하다가 끝났어요. 다음엔 더 제대로 된 게임 퀘스트로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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