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 안전을 위해 제정된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기준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는 어린이가 입에 넣어 사용하는 것 등 어린이용 제품에 대해서만 안전기준이 적용되고 있는데, 스포츠용품이나 학습교구와 같이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사용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어린이 용품 안전관리 기준이 적용되는 제품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24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신창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개최한 ‘액체괴물에 노출된 우리 아이, 어린이 용품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 정책토론회에서는 어린이 용품 안전관리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수미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국장은 어린이 제품 기준이 모호해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현재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과 환경보건법 환경유해인자 표기, 시설에 대해서는 환경보건법 어린이 활동 공간 환경안전관리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며 “하지만 만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에만 적용되고, 시설도 마감재와 토양 등에 대한 부분적인 점검만 진행되고 있어 어린이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국장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시설내장재 및 교구의 50%는 PVC(폴리염화비닐) 제품이었으며, 납‧카드뮴‧브롬 등 중금속 안전기준을 초과하는 제품도 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실과 도서실, 방과후교실 등 시설 내장재와 가구류에 사용되는 PVC 시트지에서 다량의 중금속이 발견됐다.
문구류의 경우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 유해물질 공통안전기준이 적용된 제품이 출시되면서 안전성이 확보돼 가고 있지만, 농구공이나 축구공, 배드민턴 라켓, 줄넘기 등 체육교구로 사용되고 있는 스포츠용품 중 특별법에 적용되는 제품은 줄넘기가 유일하다.
박 국장은 “이에 국가기술표준원은 줄넘기가 수업시수가 많아 특별법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했다. 다른 체육용품은 사용빈도도 낮고, 어린이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포츠용품을 구매해 환경호르몬을 분석하니, 8개 농구공 중 2개 제품에서 납이 1536ppm과 2936ppm이 검출됐다. 카드뮴은 각각 98ppm, 154ppm이었다. PVC 재질의 5개 농구공 중 3개는 프탈레이트(DEHP)가 2.03%, 3.43%, 6.08% 검출됐다”며 “환경호르몬이 다량 있는 스포츠용품이 학습교구로 사용되고 있다. 국민환경보건 기조초사를 보면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는데, 이는 어린이용 제품만 관리해서 발생한 한계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5~2017년 우리나라 국민 총 6167명 중 어린이‧청소년 2380명, 성인 37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 결과, 플라스틱 가소제 성분인 프탈레이트의 소변 중 농도는 연령대가 낮을수록 높았다. 성인의 경우 23.7㎍/L였고, 영유아는 60.7㎍/L, 초등학생 48.7㎍/L, 중고생 23.4㎍/L였다. 내분비계장애물질로 알려진 ‘비스페놀-A’ 농도도 어린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박 국장은 “어린이들의 유해물질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출원에 대한 파악과 함께 소비자 제품 전반에 대한 유해물질 관리로 전환돼야 한다. 또 어린이에게 건강영향을 미치는 물질에 대해 사용제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린이가 입에 넣어 사용할 용도’ 등 사용 목적에 따라 제품을 관리하는 기준 또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담당에 따르면 특별법은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가 아닌 제품의 경우 3종(DEHP, DBP, BBP) ▲입에 넣어 사용할 용도의 제품은 위 3종과 DINP, DIDP, DnOP 등 6종의 프탈레이트를 관리하고 있다.
법에 따라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의 제품에 대해서는 6종의 프탈레이트 총합이 0.1%를 넘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입에 넣어 사용하는 용도가 아닌 어린이용 제품은 프탈레이트 가소제(6종)의 총합이 0.1%를 초과해도 경고 표시만 넣으면 시중에 판매할 수 있다.
그는 “프탈레이트 농도가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도 다수의 프탈레이트에 동시 노출되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독성물질 해독능력이 발달되지 못해 환경오염에 취약하다”며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손가락이나 장난감을 자주 빨고, 입에 넣어선 안 될 물건을 입에 넣고 씹기도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 몸속에 노출될 수 있는데, 법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어린이 용품 내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목적은 좁게는 제품 내 화학물질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어린이 용품 및 생활용품부터 독성물질 사용을 줄여나감으로써 다양한 경로로 노출되는 총량을 줄이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 우려되는 물질 목록을 작성하고, 모든 제품에 대해 어린이가 사용하거나 제품 내 화학물질에 어린이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위해성 평가를 위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이종현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도 “현재는 (유해물질에 대한) 제조업체의 표시사항에만 의존하고 있고, 실제 노출실태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또 제품 사용 목적에 따른 구분에 의존해 제품관리가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실제 노출실태 파악 및 위해성평가를 통해 어린이 제품 안전기준이 적용되는 제품의 적용범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