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뻔한 공식 깨부수는 ‘뺑반’의 과감한 질주

[쿡리뷰] 뻔한 공식 깨부수는 ‘뺑반’의 과감한 질주

뻔한 공식 깨부수는 ‘뺑반’의 과감한 질주

기사승인 2019-01-26 06:00:00


의외의 발견이다. 영화 ‘뺑반’(감독 한준희)은 장르의 전형성을 배반하며 제멋대로 달려간다. 전작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생존을 위한 두 여성의 대결을 독특한 연출로 접근했던 한준희 감독은 이번에도 예상을 벗어난 영화를 만들었다. 익숙한 것과 익숙지 않은 것이 혼재된 영화의 스타일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뺑반’은 경찰청장의 비리 정황을 포착하려다 실패한 내사과 소속 은시연(공효진)과 윤지현(염정아)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F1 레이서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조정석)가 돈을 건네는 장면을 포착한 블랙박스를 결국 확보하지 못한 것. 실패의 대가는 가혹했다. 은시연은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돼 우선영 계장(전혜진), 서민재 순경(류준열)과 함께 뺑소니범들을 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은시연은 차에 있어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서민재가 미해결 뺑소니 사건을 수사하며 정재철을 쫓는 걸 알게 된다.

‘뺑반’은 흔히 말하는 한국형 범죄 액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됐듯 시원한 카체이싱 액션이 펼쳐지고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평범한 경찰과 재벌의 대결 구도 역시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을 비롯해 여러 번 봤던 것이다. 하지만 ‘뺑반’은 중반부를 넘어가며 본색을 드러낸다. 기존 영화의 권선징악과는 다른 길이다. 경찰 시스템과 개인의 딜레마를 다룬 홍콩 경찰 영화 같기도 하고, 미국의 슈퍼히어로 영화 같은 느낌도 난다.

단순히 범인을 잡아서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이끄는 건 ‘뺑반’의 목표가 아니다. 대신 악역으로 등장하는 정재철과 그를 잡는 경찰 서민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조직 내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누구의 선택이 더 나은지를 묻는다. 영화엔 완전한 악인도, 선인도 없다. 강한 욕망과 확신을 유지하는 이들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이들이 대립하는 이야기다. 덕분에 결말에 이르러도 뒷맛이 그리 시원하지 않다.

‘뺑반’은 독특하게도 두 가지 이야기가 여러 번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은시연은 경찰 조직의 잘못된 것을 끝까지 바로잡는 것만 바라본다. 그것을 위해 함정 수사를 하고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하는 등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나들면서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단단한 경찰의 이야기다. 서민재의 이야기는 히어로의 탄생 공식을 따라간다. 어두운 과거를 넘어 개과천선한 경찰 서민재는 부와 명예 같은 개인적인 이익엔 큰 관심이 없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범인들을 잡는 것이 전부다. 그런 그에게 헤어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오고 그것을 극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이야기는 정재철의 등장과 함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다만 은시연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위해선 서민재와 정채철이 필요하다. 덕분에 은시연은 서민재와 정재철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역할로 전락하며 존재감을 잃는다. 두 이야기를 끝까지 같은 선상에 놓고 진행하고 싶어 하는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지만, 관객들이 이 같은 낯선 전개의 필요성을 납득할지 알 수 없다.

‘뺑반’처럼 배우들의 역량이 폭발하는 한국 영화도 드물다. 그동안의 구속에서 해방된 것처럼 자신만의 해석을 자유롭게 펼쳐나가는 배우 조정석의 연기가 압권이다. 그를 상대로 능숙하고 영리한 연기를 보여주는 류준열의 존재감도 영화 ‘독전’ 이상이다. 두 사람의 변화무쌍한 대사 톤과 호흡 조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이성민 역시 짧은 분량에도 한 수 가르치듯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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