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열광시킨 갓(God) ‘킹덤’ 봤더니 [넷플릭스 도장깨기④]

외국인들 열광시킨 갓(God) ‘킹덤’ 봤더니 [넷플릭스 도장깨기④]

외국인들 열광시킨 갓(God) ‘킹덤’ 봤더니

기사승인 2019-02-23 07:00:00


“넷플릭스라고 뭐가 다를까.”

‘킹덤’ 제작 소식을 처음 접한 2017년 2월 당시 들었던 생각이다. 넷플릭스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한국에서 첫 제작하는 시리즈물인 만큼 힘을 잔뜩 준 느낌이었다. 김은희 작가-김성훈 감독이라는 신선한 조합과 조선시대 좀비물이란 독특한 소재는 실패할 리 없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심어줬다. 제작비 걱정 없이 제작진과 배우를 사들인다는 인상도 받았다.

하지만 당시는 넷플릭스 작품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였다. 오히려 실망스러운 작품들이 많아 첫 도전부터 성공할 거란 믿음을 갖긴 어려웠다. 스타 작가와 스타 감독, 스타 배우의 조합이 의외의 실패를 만들어낸 사례는 많았다. 조선시대와 좀비라는 소재가 드라마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지난달 25일 ‘킹덤’ 시즌1을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했다. 숨도 못 쉬고 앉은 자리에서 6부까지 봤다. 2년 전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누구도 이런 드라마가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장점이 많은 반면 단점도 뚜렷하다. 재미있게 봤지만 추천하기는 망설여진다. 완벽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선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킹덤’은 왕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병이 깊어진 왕(윤세웅)은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것을 넘어 아예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 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지만 영의정 조학주(류승룡)는 소문의 주동자들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한다. 만삭인 딸 중전(김혜준)이 낳을 아기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은 조학주는 힘없는 세자 이창(주지훈)을 견제한다. 왕의 침소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왕을 마주친 이창은 이상함을 느끼고 그것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로 향한다.

‘킹덤’ 전체를 이끌어가는 건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창과 권력을 쥐려는 조학주 간의 대결구도다. 여기서 한양과 동래라는 물리적 거리, 그리고 전국으로 퍼지는 역병이란 변수가 두 사람의 대결을 풍성하게 만든다. 보통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에게 사건을 만들어주고 해결하는 역할을 사람이 맡았던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킹덤’에서 백성들이 바라는 건 많지 않다. 평등한 세상을 위해 혁명을 일으킬 생각도 없고 막대한 부를 거머쥘 생각도 없다. 단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도다. 김은희 작가는 권력을 향한 굶주림과 고기를 향한 백성들의 굶주림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 그 어느 쪽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력한 조선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역병에 걸린 이들 역시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넷플릭스가 ‘킹덤’ 제작진에게 열어놓은 자유는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배고픔에 인육을 먹는다는 잔혹한 설정이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뒹구는 잔인한 장면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 분명 한국 방송 환경에서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한국 정치에 대한 시각이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한 척 남은 배를 타고 떠나버리는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모습은 한강다리를 폭파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상주의 성벽을 무력으로 고립시키는 조학주의 전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김은희 작가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유교적 당위성을 우선시하는 양반들의 모습을 중요한 순간에 집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학주와 이창의 대결구도 만큼 눈길을 끄는 건 작품 내에서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존재감 대결이다. ‘킹덤’은 인물보다는 소재, 메시지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김은희 작가는 매회 새로운 설정과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한 걸음씩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이야기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김성훈 감독은 조각을 세공하는 장인처럼 매 장면을 완벽하게 완성시킨다. 그 안에서 질식하는 건 배우들이다. 역병에 걸린 이들이 자유롭고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것과 달리 주지훈, 배두나 등 주연배우들은 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한다.

‘킹덤’은 27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190개국에서 공개됐다. 외국인들은 조선인들의 갓(God)에 주목했다. 궁궐을 비롯해 한국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려던 제작진의 의도가 엇나갔다. 생각해보면 모자를 쓰지 않은 인물이 거의 없고 제각기 다른 형태다. 모자의 디자인에 신경 쓰면서 보는 것도 ‘킹덤’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6부에 불과한 짧은 분량은 ‘킹덤’의 최대 단점이다. 첫 회에 떨어진 조학주와 이창이 이후 만나지도 못했을 정도로 완결성이 부족하다. 비판을 예상한 김은희 작가가 빨리 시즌2 집필을 시작했다고 고백한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킹덤’ 시즌2는 지난 11일 촬영에 돌입해 내년 공개될 예정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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