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한 식당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고생 주리(김혜준)가 찾는 것은 자신의 아빠 대원(김윤석). 하지만 식당의 문을 열고 아빠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몰래 훔쳐본다. 이유는 하나다. 대원이 식당 주인인 미희(김소진)와 바람이 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미희의 눈에 띄어 뒷걸음질치던 주리는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 주리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윤아(박세진)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떨어트린 것도 모르고 주리는 뛰어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학교 옥상에서 만난 주리와 윤아. 주리는 윤아에게 대뜸 “너희 엄마, 우리 아빠랑 그만 만나라고 해”라며 몰아붙인다. 어른들 이야기에는 끼고 싶지 않은 윤아는 모른척하지만 주리는 그런 윤아에게 화를 낸다. 때마침 주리의 엄마이자 대원의 아내인 영주(염정아)가 주리에게 전화하고, 주리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윤아는 전화를 받아 “아줌마 남편 우리 엄마하고 바람났다. 애도 생겼다”고 말해버린다. 주리는 기가 막혀 윤아를 탓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은 폭풍같은 사건이 닥친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주와 대원, 그리고 둘의 딸 주리. 미희와 미희의 딸 윤아. 대원의 바람으로 엮여버린 두 가족이지만 대원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도망치려고만 한다. 결국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건, 네 명의 피해자들이다. 영화는 96분이라는 시간 동안 섬세하게 네 명의 심리상태와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영화의 제목 ‘미성년’은 언뜻 두 명의 열일곱 여고생을 뜻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미성년’은 대원과 영주, 미희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대원, 이도 저도 못하고 미희를 찾아갔다가 제대로 대화하기는커녕 화풀이만 해버린 영주와 “왜 매번 나만 탓하냐”고 딸에게 무책임하게 구는 미희. 어리디 어린 어른들 틈에서 주리와 윤아는 나름대로의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간다.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주조연을 막론한 여성들의 활약이다.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외에도 정이랑과 엄혜란, 이상희까지 군데군데에서 튀어나오는 익숙한 여성 신스틸러 조연들은 독특하고도 인상 깊은 앙상블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대원의 존재감은 앙상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대원의 존재감 없음, 그 자체 또한 ‘미성년’이 가진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감독을 맡은 동시에 대원 역을 스스로 표현한 김윤석은 섬세하고도 리듬감 있는 연출력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변주해낸다. 오는 11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