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 가치와 관련된 논란은 2015년 제일모직·구 삼성물산 합병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당시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정황이 드러날 경우 통합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도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 쟁점이 향후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에도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 ‘분식회계 혐의’ 삼성바이오, 정황 속속 드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검찰 수사에 대비해 공장 바닥 밑에 회사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 등을 숨긴 정황이 확인됐다. 이는 그동안 일관되게 고의 분식회계 의혹을 전면부인 해왔던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의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게다가 콜옵션 관련된 회계법인 관계자들의 진술 번복도 삼성에겐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법인 관계자들은 “당초 금융당국과 법원에서의 진술과 달리 콜옵션 약정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전에 합작 계약서를 입수해 콜옵션을 알고 있었다’고 당초 진술을 뒤엎은 것이다.
실제 삼성바이오는 당시 2012년 당시 자회사였던 삼성에피스를 세우면서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에 삼성에피스 지분을 ‘50%-1주’까지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부여했다. 하지만 관련 공시를 지난 2013년 말까지 공시하지 않았다가 2014년에 와서야 감사보고서를 통해 ‘우발부채와 약정사항’이라는 문구에 콜옵션 부여 사실을 한 문장 정도로 언급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콜옵션이 미치는 영향, 가격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이같은 회계 기준 변경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시 4조5000억원의 장부가 이익과 1조9049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 삼성바이오 논란, 통합 삼성물산 합병 이슈까지 전이될까
결국 이번 논란은 삼성 내 제약바이오 계열사만의 문제가 아닌 그룹 전체 문제까지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정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성물산 합병 당시 기업가치까지 도마 위로 오를 수 있어서다.
지난 2015년 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 당시 비율은 1대 0.35다. 구 삼성물산이 전체 자산,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제일모직과 비교해 2~3배 이상 컸으나 합병 시 비율은 오히려 낮아 논란이 됐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이 문제와 관련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저평가됐다고 문제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엘리엇은 정부에 ISD(투자자정부소송)를 제기했다.
합병 당시 삼성 측은 주식교환 비율을 산정함에 있어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가치 및 기업가치를 크게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제일모직 지분을 다수 들고 있던 이재용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합병에 대한 정당성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참여연대 등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를 주장하는 측은 “콜옵션과 관련된 내용의 인지 여부에 따라 기업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결국 삼성바이오의 모기업이었던 합병 전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렸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관계자도 “콜옵션 부문은 삼성바이오 기업 가치와 관련된 문제이기에 삼성물산 합병과도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 구 삼성물산 건설 측은 주택 브랜드 선호도 1위를 기록했음에도 수년 간 국내 주택사업 수주 자체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당시 국내 주택경기가 활황에도 불구하고 수주 사업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일모직 합병 추진을 위한 주가 관리 차원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사안은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법원 판결에도 논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근혜, 최순실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은 유죄가 됐는데 이재용 부회장은 무죄가 된 것은 모순된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심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혐의에 대해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없었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논란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9일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 2심 사건 때까지의 사건 자료들 안에는 지금 드러나고 있는 상황들과 증거들이 하나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며 “만약 2심 선고대로 대법원 판결을 하는 것은 진실에 눈을 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물산 관계자는 최근 논란에 대해 “콜옵션 등 최근 논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