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위 변경,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최근 이슈가 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시행여부를 두고 전문가들 의견이 엇갈렸다. 화폐단위 변경은 거래 편의성과 국가 위상 제고 면에서 주목받지만 인플레이션과 비용 등 부작용을 가진 ‘양날의 검’이다.
찬성파는 비용이 경기를 부양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인플레이션 대응책도 같이 소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반대파는 화폐개혁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고 부작용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음을 감안해 ‘시기상조’라는 데 뜻을 모았다. 지금이 아닌 필연적으로 다가올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화폐개혁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최운열 심기준 의원, 자유한국당 박명재 김종석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조하현 연세대 교수가 토론회 사회를 맡았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코노미스트,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 이인호 서울대 교수, 홍춘욱 전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은 초반부터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단위를 낮추면 거래편의가 좋아지지 않겠냐는 것에 공감 한다”며 “경제속도로 보자면 화폐단위 변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공감대나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단위 변경이) 추진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정책 대안으로 물가 병행표기 신·구권 무기한 교환 등을 제안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카페나 식당 등 경제주체 행동 변화를 정부가 주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조 연구위원은 “제도가 전혀 바뀐 게 없는데 커피숍에서 5000원을 5.0으로 적는 행동은 뭔가 불편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정치권과 행정부는 들여다보고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평했다. 또한 수반되는 비용들은 결국엔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조 위원은 “신뢰가 전제된다면 경제비용 등을 감안해 시기는 충분히 논의돼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는 (화폐단위 변경을 하게끔) 가고 있다고 본다”고 마무리 했다.
반대 입장인 이인호 교수는 화폐단위 변경이 가져올 인플레이션과 비용문제를 꼬집었다. 가격변화가 균일하지 않아 손해와 이익으로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문제는 인플레이션보다 복잡한 게 5200원 커피가 얼마가 되느냐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스타벅스처럼 잘 팔리는 곳은 6.0으로 올릴 수 있다. 아닌 곳은 시간당 6200원 급여는 6원이 될 수 있다”며 “가격변화가 대부분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력이 약한 주체들이 쪼개져야 하는데 쪼개지 않도록 하자는 게 화폐개혁 목적이다 보니 올림이나 내림이나 반올림이나 손해, 이익이 갈린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 문제나 방향과 일치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화폐단위 변경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이게 단지 경기 부양, 이거 바꾸는데 돈 찍느라고 비용이 들 텐데 고용이 늘어날 수 있지만 돈만 찍어내는 게 문제가 아니고 계약서를 다 바꿔야 한다. 사회적 비용이 그렇게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용을 고려하고 그래도 ‘0’이 많은 게 창피하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양오 고문은 발언 순서가 되자 “눈에 흙이 들어와도 절대 (화폐단위 변경은) 안 된다”고 말했다.
최 고문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낮고 우리나라가 점차 현금 없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는 오히려 ‘불가피한’ 화폐개혁을 두 차례나 거치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최 고문은 “필연적으로 예고된 화폐개혁이 두 번 남아있다”며 “남북한 통일 경제가 되면 단일화폐를 써야 하는데 그럼 화폐개혁을 해야 하고 가상화폐·디지털화폐·디지털결제로 갈 경우 글로벌 화폐를 써야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화폐개혁 논의를 미래 필연적 개혁을 대비하는 쪽으로 진행돼야한다”고 끝맺었다.
홍춘욱 전 이코노미스트는 화폐단위 변경에 반대하는 이유로 ‘낙인효과’와 ‘트라우마’를 언급했다.
홍 전 이코노미스트는 화폐개혁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고 오히려 대외적인 불신만 키울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현금 없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고 가상지갑이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단위 표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하현 교수도 반대 입장을 거들었다. 조 교수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우리 경제 여건 상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학계도 상당부분 반대 입장이 깔려있다고도 설명했다.
조 교수는 “신·구권 가격 동시 통용 쉽지 않아 보인다. 장·단점이 분명하다”며 “개인적으로는 시기상조다. 뜻은 찬성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이걸 걱정하기에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혼란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제도가 뜻이 좋아서 시행되지만 현재 상당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며 “의도가 좋더라도 시행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화폐단위 조정은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속전속결, 속달하지 마시고 경제는 엄밀한 분석에 의해서 접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