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지금 시청자가 80년대 루저를 본다면 [넷플릭스 도장깨기⑨]

‘기묘한 이야기’ 지금 시청자가 80년대 루저를 본다면 [넷플릭스 도장깨기⑨]

‘기묘한 이야기’ 지금 시청자가 80년대 루저를 본다면

기사승인 2019-06-15 07:00:00


넷플릭스가 2016년 공개한 ‘기묘한 이야기’는 1983년 미국 인디애나주 가상의 마을 호킨스를 배경으로 한 아이의 기묘한 실종 사건을 다룬 드라마다. 마이크(핀 울프하드)의 집 지하실에서 호킨스 중학교 과학서클 멤버들과 TRPG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을 하고 자전거로 집에 돌아가던 윌 바이어스(노아 슈나프)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은 후 사라진다. 평화로운 호킨스를 지키던 경찰서장 짐(데이비드 하버)은 처음엔 단순 가출 사건인 줄 알았지만, 햄버거 가게를 하던 베니의 사망과 가출할 리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윌의 어머니 조이스(위노나 라이더)의 반응을 보며 심상치 않은 사건임을 직감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다. 호킨스 마을 사람들이 괴생명체가 사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아가며 윌을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호킨스 국립연구소의 비밀스러운 실험과 그곳을 탈출한 소녀 일레븐(밀리 바비 브라운)이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1980년대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장치들과 영화들의 오마주가 펼쳐진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와 다음 내용을 알 것 같은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기묘한 이야기’는 시청자와 평단의 호응을 얻으며 시즌2, 3까지 제작됐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정주행을 멈추기 힘든 몰입감이 그 이유다. ‘기묘한 이야기’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마을 전체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윌의 친구인 마이크와 윌의 어머니인 조이스, 윌의 형인 조나단(찰리 히튼), 경찰서장 짐까지 크게 네 인물의 시점이 쉼 없이 교차된다. 그들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에 조금씩 접근해 가는 과정이 비슷한 속도로 진행된다. 나중에 어느 지점에선 서로 만나 합심하기도 한다. 우정, 사랑, 가족, 정의 등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르는 윌을 구하겠다는 순수한 목적과 절실한 마음은 모두가 단단히 공유하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은 2010년대 시청자들을 80년대 낯선 마을에 사는 인물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입시킨다. 학교에서도 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과 이혼한 고집 센 여성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시각에선 사회적 루저에 가깝다. 고통을 겪고 주류와 반대로 뛰어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응원하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년의 시간을 건너뛴 지금 시점에선 아무도 이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지금은 취향과 삶의 방향에 있어 소수와 다수의 차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모두가 학습하고 있는 시대다. 결국 드라마 속 인물들은 적은 숫자로도 다수의 도움 없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을 겪을지언정 힘들다고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다. 지금 넷플릭스를 통해 ‘기묘한 이야기’를 보는 시청자들은 등장인물들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걸 안다. 당시엔 아무도 몰랐겠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작품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넷플릭스에게도 의미가 크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기묘한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넷플릭스 작품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특히 80년대 미국 문화의 정서와 전자음 위주의 음악, 인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 등은 이후 제작된 다수의 넷플릭스 작품에서 차용된 공식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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