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불 이후, 재난심리지원 현장을 가다

강원도 산불 이후, 재난심리지원 현장을 가다

기사승인 2019-07-05 14:06:24

<사진=에이팟코리아 제공>

지난 4월 3일 강원도 지역의 산불로 여러 마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고성군 내 7개 마을(용촌1,2리, 원암리, 인흥1,2,3리, 성천리)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했고, 많은 주민들이 오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주민들은 정부와 민간이 마련한 임시 거처에 머물며 숙식을 해결해야했다.

산불로부터 3주 후인 4월 22일, 5명의 예술심리치료사과 함께 원암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실내의 공기는 무거웠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임시 숙소에 머무는 주민들은 따뜻한 식사를 제공받았지만,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진=에이팟코리아 제공>

처음 보는 예술치료프로그램은 조금 생경했다. 치료사들의 리드에 따라 주민들이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차 몸 전체로 움직임이 커져가는 동안 주민들의 가슴을 억누르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재난 상황에서 몸에 저장된 다양한 긴장, 두려움, 놀람 등의 에너지를 풀어내고 난 뒤에는 서로의 등을 맞대거나 손을 얹고 서로를 지지하는 과정도 진행됐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재난경험을 몸으로 풀어내고 대화하는 과정이었다. 

한차례 서로의 힘을 느끼며 몸을 풀고 나서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표출했다.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스카프를 날리거나, 타령과 같은 곡조에 소망을 담아내기도 했다.

“우리마을 잘돼라, 나쁜 것은 물러가고, 좋은 것만 오너라~” 

 <사진=에이팟코리아 제공>

함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은 붓이 아닌 부드러운 스폰지로 종이 위를 톡톡 두드려 만드는 것이었다. 형형색색의 그림이 완성되면서 주민들의 호흡이 편안해지고,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 타버린 화단을 떠올리며 꽃밭을 만들기도 하고, 마을에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사람을 세워두기도 하는 등 주민들은 그림을 통해 소망을 찾고, 마음을 위로했다. 치료사들과 주민들이 눈으로, 손으로, 몸 전체로 공감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일까, 굳은 표정이었던 주민들은 프로그램을 마친 후 ‘그래도 움직이니까 좋다’,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다’고 이야기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표정도 홀가분해졌다. 

<사진=에이팟코리아 제공>

마을회관을 찾은 치료사들은 심리사회적지원센터 아트온어스(Art on Earth, 대표 송정은)와 서울여자대학교 특수치료전문대학원 졸업생으로 구성된 팀이다. 강원도 지역의 재난심리지원을 위해 지난 4월 10여 명의 치료사들이 모였고, 3주간의 사전 준비를 통해 프로그램을 갖췄다. 1차 프로그램은 지난 5월까지 7개 마을에서 2회씩 총 14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트온어스와 재난구호단체 라이프라인코리아(Life-line Korea, 구 피스윈즈코리아), 에이팟코리아(Asia Pacific Alliance for Disaster Management, A-PAD KOREA)의 인연으로 가능했다. 아트온어스는 예술활동을 통한 창의적 심리자원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지난 2015년 네팔 대지진 시에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의 재난심리지원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에이팟코리아는 아트온어스, 라이프라인코리아와는 긴밀한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속초 재난현장에는 에이팟코리아가 가장 먼저 달려갔고, 예술심리치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아트온어스에 지속적인 심리지원을 요청한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에이팟코리아의 지원과 아이쿱생협의 후원을 통해 지속성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게 됐다. 

<사진=아트온어스 제공>

현장에서 만난 치료사들은 한목소리로 “재난 초기에 예술심리치료사들이 투입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평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재난심리지원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이정민 동작치료사는 “재난은 물질적 피해가 복구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사자들이 재난으로 인해 경험한 엄청난 심리정서적 충격과 어려움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잘 해결하고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 온전히 종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예술심리치료를 통해 신체정서적인 긴장을 안전하게 해소하고 내면의 긍정적인 자원을 찾아 정서적으로 압도되었던 재난의 경험들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수용하도록 안내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1차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이팟코리아는 재난심리지원프로그램을 추가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아이쿱생협의 후원으로 추가 진행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서울공연초등학교 6학년2반 학생들이 모은 성금이 전달되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2차 프로그램은 6, 7월에 걸쳐 진행되고 있으며, 오는 15일까지 6개 마을(인흥1,2,3리, 원암리, 용촌1,2리)에서 각 4회씩 3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상세 일정은 아트온어스 SNS 및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심리사회적지원센터 아트온어스는 ‘심리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 지원하고 심리 사회적 회복을 돕는다‘는 목표로 2018년도에 설립되었으며, 재난심리지원을 비롯해 무국적아동, 군피해유가족, 치매어르신, 암경험자 등의 커뮤니티를 위한 심리지원 등의 주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재난안전소셜벤쳐 라이프라인코리아는 방재선진국의 시민훈련프로그램을 한국화하여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2019년도에 설립되었다. 즐겁게 배우는 재난안전교육, 테라피독 등 주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에이팟코리아는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의 재난 현장 긴급 구호 · 복구 · 방재 · 재난 이후 지역재생 등을 다루는 아시아의 대표적 국제기구로 2012년에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5개국에서 정식발족 현재는 방글라데시를 포함하여 6개국의 멤버국가에서 110여개 NGO와 800여기업과 함께 주요 활동을 전개해왔다.


김영보 기자 kim.youngbo@kukinews.com

김영보 기자
kim.youngbo@kukinews.com
김영보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