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맥주, 원래부터 독해서 잘 안 먹었습니다. 아사히 없어져도 괜찮아요.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맥주 한 모금이 문제겠습니까.”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일본산 제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유니클로, 무인양품, ABC마트 등의 의류와 생활용품 분야에서는 아직 미진한 모양새지만, 아사히 등 주류에서는 매출이 떨어지는 등 불매운동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전 범위로 확대될지 귀추가 모인다.
10일 점심께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만난 중년의 주부 김모 씨는 테라와 카스 각 4캔씩을 카트에 담고 있었다. 김씨는 “남편이 평소에는 아사히 등 일본 맥주를 즐겨 마시는 편인데, 이번엔 고르지 않았다”고 멋쩍게 말했다. 곧 예순을 앞두고 있다는 강모 씨도 “외국맥주는 독해서 잘 안 마신다”면서 “아사히 없어도 괜찮다. 맥주 한 모금에 나라 팔겠나”라고 소신을 밝혔다.
물론, 개인의 선호를 중시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30대의 주부 심모 씨는 “개인의 입맛인데 쉽게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일본 불매운동을 진행한다고 시끄러워도 잘 체감하지 못하겠다. 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며 카트 속의 아사히 맥주를 보여줬다. 롯데마트 서울점은 아직 일본 맥주의 매출이 확연히 떨어진 상태는 아니다. 중국인 등 외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점포로 보면 일본 맥주 매출 하락이 확연히 나타난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롯데마트의 일본 맥주 매출은 10.4% 감소했다. 수입맥주 전체 매출 감소치인 -2.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같은 기간 이마트에서도 수입맥주 매출이 2.9% 오른 가운데, 일본 맥주는 14.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불매운동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일부 중소 마트들은 불매에서 더 나아가, 일본 제품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아사히 등 맥주는 물론, 일본에서 생산된 담배, 된장, 가쓰오부시 종류를 모두 퇴출했다. 서울의 한 중소 마트에는 입구부터 ‘과거사 반성없는 일본! 일본산 제품을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계산대와 상품 매대 곳곳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겠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이곳 마트 관계자는 “일본 제품을 팔지 않으면 아무래도 매출이 떨어지지만, 불매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배와 주류 등 기존 일본 제품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들은 모두 국산으로 채워졌다. 손님 대다수도 이 같은 조치를 반겼다. 근처 주민 이모씨는 “일본 불매운동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라고 환영했다.
이처럼 중소 소매점들이 일본 제품 퇴출을 선언하면서 불매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국 편의점과 슈퍼마켓들로 구성된 한국마트협회는 “이미 다수 매장에서 일본 제품을 반품처리하고 판매중지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 상태다. 여기에 일본이 추가적인 (경제보복성) 조치를 취할 경우, 불매운동은 전례 없던 국민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주류에서 가장 먼저 ‘일본 불매운동’의 효과가 나타난 것을 두고, 상대적으로 ‘대체재’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유니클로, 무인양품, ABC마트의 매장에는 아직까지 불매운동 전과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 등의 브랜드는 아직까지 인기가 많아, 매출 감소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라며 "맥주의 경우는 불매운동 전부터 국산 테라 등의 맥주가 강세를 보이던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