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외진단의료기기업계가 비상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현재 84조원에 달하는 세계 체외진단기기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많이 잡아 0.6%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체외진단기기의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제도적 한계와 지원부족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이 재정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관련 기업들은 이익을 대변할 협회를 구성, 17일 1차 정기총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첫 발은 환경조성으로 보인다. 법이라는 발판 위에서 도약하려면 업계가 사회의 변화와 소비자의 바람을 이해하고, 의료계와 진단기기업계, 정부가 상생·협력할 수 있는 유기적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광운대학교 의료기기개발 지원센터 김영주 교수는 이날 기업가이자 기술개발자로 시작해 십여년간 쌓아온 경험을 녹여 ‘체외진단용 의료기기 R&D(연구개발)와 지원시스템’이란 제목의 발표와 통해 국내 체외진단기업과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환경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설파했다. 핵심은 ‘소비자’였다.
지금까지 이어진 기술 중심의 제품개발에서 의료현장에 대한 이해와 필요를 바탕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좋은 기술의 제품을 만들어 내놓으면 알아서 환자나 의사가 알아서 사용하는 시대가 지나고, 환자와 의료진, 사회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필요한지를 그들 관점에서 살펴 제품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소비자관점’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료현장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필요를 파악하고 융합적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면서 “장벽이 존재하기에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제품도 환자나 의사의 입장이나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무엇이 없다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의 풀이대로라면 IBM의 왓슨 등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직관적으로 병변을 구분해주는 등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기개발이 다수 이뤄지고 있지만, 의사들이 선택을 주저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자동으로 구분된 병변이 실제 문제가 있는지, 다른 병변의 누락은 없는지 등에 대한 의사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믿음이나 이익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 교수는 “2025년, 고령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과연 병원들로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령화가 지속되고 이들을 돌볼 환경이 점차 열악해질수록 예방·관리 중심의 홈케어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체외진단시장 또한 성장할 것”이라며 산업계와 의료계, 정부가 상생·협력할 생태계 구축 필요성도 소비자관점과 함께 강조했다.
김 교수가 ‘바이오생태계’로 표현한 협력체계는 업체들 간의 부품 공동구매, 공장 및 설비의 공유, 사용자인 병원 등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수익모델,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등으로 발생하는 정책적 어려움을 개선시킬 수 있는 시장의 변화 등이 가능한 유기적이고 상호협력적인 구조다. 그리고 이를 두고 ‘미래’라고 설명했다.
한편, 체외진단의료기기협회 1차 정기총회에는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을 발의한 국회 행정안정위원회 위원장이자 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전혜숙 의원을 비롯해 2020년 5월 법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안전국 양진영 국장과 고대우 사무관 등이 참석해 정책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협력과 소통을 약속했다.
이에 정점규 협회장(젠바디 대표)은 “뛰어난 기술과 제품을 갖췄음에도 자금 확보나 인허가를 무기로 자국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으로부터 차별을 겪는 국내기업들을 돕고, 정부나 의료기관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며 김 교수가 말한 ‘바이오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