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보는 시각이 같은 업계에서도 분분하다. 과거 참여정부(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처럼 재건축 등 공급을 옥좨 결과적으로 집값이 더욱 치솟을 거라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투자(투기)수요가 줄어 높은 분양가로 인해 주변 집값까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차단할 것이라고 보는 쪽도 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은 수요억제 및 공급 등 여러 부동산 대책에 있어 ‘참여정부 시즌2’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판박이다. 당장 오는 12일 발표 예정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까지 과거 참여정부 시절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규제의 반복=참여정부는 2003년 5·23대책으로 부동산대책의 포문을 열었다. 2002년 서울 집값이 30% 이상 뛴 것에 따른 조치였다. 이후 금융위기까지 무려 30여 차례 이상의 대책을 발표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분양(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 분양원가 공개항목 확대) ▲세금(종합부동산세 신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강황) ▲대출(투기과열지구 확대, LTV·DTI 등 도입) ▲공급(판교·동탄 등 2기 신도시) ▲기타(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도입)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도 앞서 2017년 6월19일 첫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전 정부에서 완화했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강화하고 전매제한기간을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8·2대책을 내놓았고, 집값이 다시 불안해지자 9·13대책을 발표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까지 도입되면 여러 면에서 ‘참여정부 시즌2’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판박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잡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참여 정부 5년 동안 서울 집값은 평균 79.94%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도 오름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30.7% 올랐다.
◇“서울 집값 1.1%p 하락할 것”=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참여정부 시절과 동일한 수순을 밟으면서 서울 아파트값 급등 등 과거의 실패가 재연될 지를 두고 업계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국토연구원과 시민단체는 서울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확대 도입할 경우 서울 주택매매가격이 연간 1.1%p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천규 국토연구원은 “분양가상한제 확대 도입은 주택시장 안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규제의 영향을 덜 받았던 재건축 일부 단지와 재개발 단지에 대한 쏠림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상되는 개발이익이 줄어들면서 높은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투자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높은 분양가로 인해 주변 재고주택의 가격을 동반 상승시키는 효과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서울 아파트 가격이 분양가상한제 시행 초기에만 일시적으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점차 하락 안정세를 나타냈다는 것.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2008년 4억8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간값은 2014년 4억7900만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집값은 오히려 상한제 폐지 이후 급증하기 시작해 2016년 5억9800만원, 2018년 8억4500만원으로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시장의 눈치를 보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면 다시 참여정부 때처럼 실패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공급 줄어 집값 오를 것”=업계에서는 시장이 분양가상한제 확대를 공급 축소 시그널로 받아들이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상당수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사업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주택 공급 자체가 줄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 세입자들이 시세보다 저렴한 ‘로또 분양’을 받기 위해 전세에 머물면서 전셋값마저 오를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달 건설사들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앞두고 분양 물량을 쏟아냈다”며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공급 물량이 줄어들면, 새 아파트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7월 건설사들은 분양가 상한제 등을 의식해 준비 중이던 단지를 후분양으로 검토하거나 일정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 도입에 따른 건설사 눈치 보기가 시작되면서 예정된 분양이 더욱 늦춰지거나, 주변 시세가 오른 이후 공급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권대중 교수(명지대 부동산학과)는 “부동산 시장의 정책적 사이클을 살펴보면 참여정부 시절의 공급 위축과 가격 급등이 또다시 재현될 위험성이 있다”며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경제 보복 등으로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